지난 11월에 대장합의 홈페에지에 원주장로찬양단의 남 정민 단장님께서 대장합 박 정도 단장님께 보내신 글을 읽고 가슴이 아팟습니다.
2010년에 전국장로합창단의 연주회를 주최하여 저력이 넘치던 원주장로찬양단의 소식이라고는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 단장님이 "그 사이 얼마나 힘이 두셨으면 그런 내용의 글을 올렸을까?"를 생각하면서 격려의 댓글을 올렸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원주장로찬양단의 제 8회 연주회가 예정대로 2011년 11일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남 단장님께 익산에서 원주까지는 먼 거리이지만 참석하여 격려를 하겠다고 약속을 했기에 10일 밤에 익산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11일 오후 2시에 고 준환 단장님, 김 광수 서기님, 김 종섭 재무님과 일행이 되어 처음으로 제가 운전을 했는데 3시간이 소요되어 원주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시력이 약한 저는 특히 밤눈이 어두운 관계로 야간운전을 절대로 불허하는 아내에게 다른 분이 운전을 한다고 속였으니 아버지학교 사역을 하는 저로서는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선한 목적의 거짓말을 해서라도 원주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사가 이런 식이니 아내는 나에게 아버지학교의 "아" 자만 나와도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농담삼아 "우리 다시 태어나면 부부로 또 만나자!" 고 하면 처음에는 "당신을 또 만나다니 미쳤냐?" 하던 아내가 요즈음은 "당신이 다시 태어나는 세상은 절대로 안 태어나?"라고 합니다. 가족이 중요하지만 이제 며칠이 지나면 62세가 되는 나로서는 남은 삶이 죽음을 예비해야 하기에 현재 하고 있는 8가지 주의 사역을 소홀히 할 수가 없으며 나의 모습에서 주님의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바로 아내의 내조라는 것을 아내가 깨달아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원주제일장로교회에 도착을 하니 예상했던대로 대구의 박 정도 단장님, 정 희치 지휘자님, 그리고 두 분의 장로님께서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반겨주셨습니다. 이어서 남 정민 단장님, 한울장로성가단 장로님, 전국협회장 장로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고, 식사를 하고, 연주회에 참석을 했는데 사고로 부상을 당했다는 지휘자 장로님과 남 단장님과 단원들이 부르는 찬양은 그 어느 때의 찬양보다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마지막 순서로 이제는 장로합창단의 주제곡이 되어버린 "찬양하는 순례자"를 작사자이신 박 정도 단장님과 작곡자이신 정 희치 장로님의 소개에 이어 정 장로님의 지휘로 격려차 참석한 우리들까지도 원주장로찬양단에 합류하여 힘껏 불렀습니다. 이 찬양을 부르면서 익산의 연주회에서도 마지막을 원주와 같이 해보기를 그려보았습니다.
연주회를 마치고 귀가를 하여 시계를 보니 하루가 지나고 새날 1시 20분이었습니다. 피곤했지만 원주장로찬양단이 심기일전하여 찬양의 열기가 재충전되어서 전국장로합창단의 연주회를 주최했을 때보다 더 높이 도약하기를 기도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사례를 답습하는 것은 손쉬운 리더쉽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장합을 마냥 부러워만 하지말고 익산과 같이 대장합을 벤치마킹한 다음 익산만의 독창적인 것을 가미하여 오늘의 익산장로합창단이 존재하는 것처럼 원주나 기타 지역의 장로합창단도 새롭게 도약하는 합창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금번 원주장로찬양단의 연주회에도 어김없이 참석해 주신 박 정도 단장님의 열정을그동안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처음과 이후 몇 번은 감동적이었지만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감정이 무디어졌습니다. 장로 인생의 마지막 코스가 "장로합창단"이라고 언급하시며 이 땅과 해외까지 하나님 찬양의 씨를 심으시는 박 정도 단장님! 단장님의 혼이 담긴 찬양의 연기를 하나님께서 빠짐없이 지켜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정이 우리 후배들에게 전염되었고, 더 나아가 우리의 2세, 3세....들에게도 이어질 것입니다.
단장님! 건강하시고, 며칠 남지 않은 2011년을 잘 마무리 하시고, 단장님의 2012년을 익산의 작은머슴이 축복을 합니다. 단장님과 함께 했던 원주에서의 시간이 참으로 복된 시간이었기에 위와 같이 제 마음을 적어 보았습니다.
박 정도 단장님! 당신 정말로 멋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