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해 덕담 ' 『월남 이상재 선생이 구한말 당시 의정부의 정2품 관직인 참찬(參贊) 벼슬자리에 계실 때의 일화이다.
당대 조정에서 제일가는 세도를 누리던 대신(大臣)집에서
요샛말로 새해맞이 조찬회 같은 것을 한다고 전갈(傳喝)이 와 월남선생을 비롯해 고급 관료들이 새해 첫날 아침 일찍 그 집 사랑에 모여들었다.

마침 대감께서는 사랑마루에 세숫대야를 놓고 막 세수를 하는 참이었다.
희귀한 서양비누로 얼굴을 씻는 대감의 얼굴에서 허옇게 일어나는 거품을 신기한 듯 보며 월남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하게 물었다.

“대감님, 사향(麝香) 냄새가 나는 이 물건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응, ‘석감(石鹼)’이라고도 하고 서양에서는 ‘사분’이라고도 하는 건데,
그냥 물에다 풀어서 이렇게 문지르기만 하면 얼굴에 묻어있는 때가 말끔히 씻긴다네.”

그러자 월남선생은 대뜸 비누를 집어 들더니
세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관료들을 향하여 외쳤다.
“이거 참 신기한 물건이외다. 우리 모두 다가와서 이것을 한입씩만 떼어 꼭꼭 씹어 먹읍시다.”라고.

그제야 대감께서는 기겁을 하고 “야〜 이 사람아! 그것은 얼굴이나 몸뚱이에 묻어 있는 더러운 때를 깨끗이 씻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지, 그건 먹는 게 아닐세!”라고 강하게 타이르듯 말했다.

그래도 월남은 태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비누를 한입 뚝〜 떼어 씹으면서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생(侍生)은 지금 우리 고관들이 얼굴의 때보다는
뱃속, 그 마음속에 하도 많은 때가 끼어서, 이 시커먼 속 때부터 씻어 내야만 나라가 바로 될 것 같아 그러는 겁니다.”

그날 대신 집에서의 새해맞이 조찬자리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던 수두룩한 좌중(座中)의 벼슬아치들은
하나같이 서로 눈치만 보며 우물쭈물 비누만 쳐다보다가 말 한마디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찬양하는 순례자 애독자에게서
카톡으로 받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일화를 옮겼다.
월남(月南) 이상재 선생(李商在/1850년 충남 서천출생)은 우리나라 개화기 민족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선생께서는 구한말(舊韓末) 일제강점기(日帝強占期)시절

유술부(柔術部)가 창설될 때 초대총무가 되어 서구(西歐) 스포츠인 유도, 검도, 야구 등을 젊은이들에게 보급하며
조국독립과 구국을 위한 인재양성에 힘쓴 분으로 애국(愛國) 에너지가 넘쳐난 ‘영원한 청년’이었다.

'장사(壯士) 100명만 양성하면 나라에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강조하며
1903년 53세 때 한성감옥에서 성경을 읽고 크리스천이 되어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YMCA)’ 를 만들어 20년 가까이 기독교정신으로 활동하면서
1919년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과 함께 3.1운동의 초석이 되어 또 다시 투옥되셨다.

훗날 조선소년연합척후대(보이스카우트)총재와 조선일보사장이 되어
조국의 광복을 못 본 채 1927년 향년 78세에 별세하신 후 우리나라 최초 사회장(社會葬)으로 모셨다.

이처럼 올곧게 나라를 염려하던 선생에게는,
굶주린 백성이야 어찌되든 내 배만 채우려는 벼슬아치를 그냥 볼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뭇 지도자들이 겉은 깨끗한 척하지만 속은 시커먼 게 숱해 실망하지만….

새해 첫날 ‘이상재 선생’이 비누를 씹으며 외치심 따라,
‘2023-40주년을 준비하는〜 대장합!’의 슬로건으로 ‘마스크 벗고 찬양하는 새해소망’과 함께

코로나로 무너진 ‘150명 단원의 위용을 되찾는데 올인’하며,
이 땅의 ‘찬양하는 순례자들을 섬기듯 보듬는 봉사자의 사명감’으로

단원모집에 첫걸음을 내딛으려는 큰 머슴의 각오를 ‘새해덕담’으로 삼고자 이글을 썼다. ♥ DEC150/늘 찬양하는 큰 머슴 ♥
☞ 지난 12월 26일(月) 애국하는 마음으로 대장합 임원들과 '광복회'를 찾았을 때... ☜ ♪ 흐르는 곡은~ /Whispering Hope(희망의 속삭임) ♪  ☞ 윈도우10으로 제작해 음악이 들리지 않음에 DEC(대장합)홈페이지로...☜ -www.dechoir.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