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찬송가 위원님! 안녕하십니까?
보내주신 시편찬송가 잘 받았습니다.
그간 너무 많은 수고를 하신 흔적이 곳곳에 보입니다.
특별히 서목사님 그간 사명감을 가지시고 애써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이 하는 일들이 작지만 매우 소중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시편찬송가 편집 발행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찬송가에 대한
제 소견과 지금까지 21세기 찬송가 편집에서 느꼈던 점을 함께 나누고
우리들의 보람된 일에 도움이 되리라 싶어 조심스럽게 언급합니다.
총회에서 21세기 [찬송가] 문제를 언급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새찬송가 위원회와 한국찬송가위원회가 50:50지분을 약속하고
한국찬송가공회를 조직해서 [통일찬송가]를 1983년도에 발행하였던 바
이제는 한국찬송가공회가 예장교단을 왕따 시키려는가요?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바, 교단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예전처럼 [새찬송가]를 다시 교단단독으로 발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찬송가 편집과정에서 편집위원을 돌려가면서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는지 편집위원이 교체된 상황에서 오류를 그대로 두고서
21세기 [찬송가]를 발행하고, 떼 돈-큰돈-을 벌려했던지 왜 그릇된
부분을 알면서도 찬송가공회에서 반제품을 가져다가 겉표지만
씌워서 찬송가를 발행한다면서 책임을 회피하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여러번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수정을 기피함으로 여러번 미뤄져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우리 교단 찬송가만큼이라도 신학적으로 찬송가학적으로 그릇된 부분을
바로잡아 시편찬송가를 개발하여 예장출판사에서 찬송가를
발행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왜 찬송가공회에만 들어가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거기서 바른 말 할 수 있어야 [찬송가]가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왕 공회 21세기 [찬송가]를 쓴 다면
다음 부분은 꼭 수정되어 찬송가가 교단 성도들에게 배본했으면 합니다.
돈을 벌려고 예장출판사 한 것 아니잖습니까? 자동차도 리콜하는데, [찬송가]라고
왜 리콜을 못 합니까?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 교단의 위상을 생각해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내용은 하도 답답해서 신학위원회에 또 총회 게시판에 게시했던
내용을 다시 올려드립니다.
댓글에 동조자는 있어도 해결자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1세기 새 [찬송가]에 대한 소견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군산노회소속 '성도교회' 신소섭 목사입니다. 안녕하세요?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메일로 소식을 전합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면서도 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1996년 부산 하얏트 호텔에서 저의 발제강연 제목은 [21세기 한국 찬송가를 위한 대책 및 시안] -현행 찬송가의 비판과 그 대책을 중심으로 - 이었습니다. 발제강연으로부터 무려 10수년이 지났습니다.
무려 3년 반이나 찬송가공회에서 21세기 [찬송가]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여러 번 위원들이 바꾸어져서
찬송학적이고, 신학적인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먼저 불찰과 힘의 한계를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상작인 방법으로 의견을 다시 제시합니다.
저는 사실 새로운 [찬송가]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기쁨이 넘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 21세기 [해설찬송가] 해설위원으로 해설을 다 작성하여 원고를 다 넘겼습니다. 원고료도 받지 못핸 채 말입니다.
총회 이름으로 명목상의 위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전문위원을 한 분 쯤은 파송해야 이러한 일들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무실하고 교단의 산학도 모르는 그런 총무 말고요. 그러나 공회가 재단 설립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작업을 하면서 잘못된 부분들을 왜 고쳐지지 않았나? 책임을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찬송가가 나와 왜 이렇게 고쳐지지 않았는가? 하고 총무 장로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직원을 불러 즉석에서 "이 가사 문제가 어떻게 된 거냐?"고 현장에서 묻더군요 그러자 회의록을 보면서 그때 상황을 얘기해주더군요. "마귀들" 가사문제로 가사분과 찬송가 공회위원들 간에 언쟁이 오고가면서 싸우는 와중에 결말이 안나자.총회에서 파송된 어른(당시 공동공회회장)이 "그냥 놔두고. 그냥 지나갑시다." 이렇게 해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서는 저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1983년 발행된 공회 [찬송가]를 편집하면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 우리 교단의 신학입장에 반한다고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으로 결사적으로 발언하여 (당시 차영배 위원) 고쳐졌습니다. 그러나 좀더 원가사(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를 세밀하게 살폈다면 "주님께 가까이 나갑니다."나 "내 주를 가까이 더 가까이"로 했으면 다시 손질하지 않아도 될 번 했습니다.
얼마 전 교계신문에 나채운 교수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사건으로 굉장히 떠들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어 원문에 보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요, 그분의 생각의 산물이라할 수 도 있습니다. "어둠에 묻힌 밤"이라는 가사 문제 제기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제기하고 있는 문제는 다릅니다.
21세기 [찬송가] 348장<통일 [찬송가] 388장>은 그대로 1,2,3절 초두에 모두 "마귀들과"로 그냥 놔두었습니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마귀들"이란 표현이란 엄청난 신학상의 오류입니다.
다음 사항들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존의 통일 [찬송가] 388장이나 269장에서 "마귀 들"이란 표현은 성경에도 없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성경 여러 본문 어디에도 “마귀들”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귀는 대장이기에 항상 헬라어 (διaβολοs)에서 단수로 쓰였습니다.
성경신학적으로 “마귀”라는 성경구절은 신구약 성경에 모두 34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32:17, 마 4:1, 5, 8, 11, 13:39, 25:41, 눅 4:2, 3, 5, 13, 8:12, 요 6:70, 8;44, 13:2, 행 10:38, 13:10, 엡 4:27, 6:11, 딤전 3:6, 7, 딤후 2:26, 히 2:14, 약 3:15, 4:7, 벧전 5:8, 요1서 3:8, 10, 게 2:10, 12:9, 20:2, 20:10절 등입니다.
위의 성경 구절 중에 신명기 32;17절만 라쉐디임(?????)으로 70인 헬라어 역경에 δαιμονiοι, δαιμoνιον으로 <이방신들, 귀신들, 악령들>을 의미할 경우만 복수로 쓰여 진 경우이고요, 나머지 경우에 용례는 모두 “마귀”라는 명칭이요, 분명히 단수요, 그 정체가 사탄(Σατaν 즉 악령의 왕이며,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숙적)인 [마귀]인 것입니다. <신소섭, [예배와 찬송가](서울 : 아가페문화사, 1993), p.184 참조>
그래서 통일 [찬송가] 269장인 21세기 [찬송가] 522장에서는 다행히 고쳐놓았습니다. 원곡을 첨부했사오니, 첫째 마디를 사분음표로( ♩ )로만 고치고 , 가사를 "마ㅣ 귀와 싸울지라 죄악ㅣ"로 고치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첫째 마디의 리듬을 그대로 두고서 가사만 고친다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귀 싸워ㅣ 이길지라 ㅣ"로 가사만 고치면 찬송가 차례 찾기에도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쉽게 수정할 수 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작은 예에 불과한 것이지요. 대다수의 성도들이 알지 못하는 오류가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찬송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어서 연구하고 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지금 가뜩이나 출판에 엄청난 힘을 쏟고 있는 시점에서 일일이 말한다는 것은 작업을 늦추는 반작용이 나타날까 해서 그냥 접어 두려고 하다가 출판국에 전화를 해보니 지금 찬송가공회에서 수정해서 명령만 떨어지면 곧 고칠 수 있다고 하기에 이렇게 급히 전하오니 선처를 바랍니다.
그리고 21세기 [찬송가] 281장 4째 소절 첫 마디에 베이스 테너음이 G-Bb으로 배치 한 것은 화성법 상 아주 부자연스럽고요. 올바른 화성법은 Bb-Bb으로 고쳐지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박이기 때문에 7화음보다는 정 3화음으로 배치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음악분과를 맡은 김홍규 목사가 자신의 곡이어서 출판사에 연락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빨리 고쳐져야 합니다.
작곡자나 작사자의 오기, 연대의 착오 등 문제는 해설찬송가에서 바로 잡아 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51장과 52장의 곡명을 똑같이 [봉헌]으로 아래 제목 분류를 그대로 곡명으로 기재한 것은 찬송가학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넌 센스입니다. 곡명을 바르게 붙여주어야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찬송가로 거듭날 것입니다.
21세기 [찬송가] 449장의 작곡자는 돈(W. H. Done, 1832-1915)이 아니라 타우너(Towner, 1850-1919)가 옳습니다. 564장의 성구는 원곡이 말라기 3:17인데, 1937년 [찬숑가]를 편집하면서 누군가 마 18:3절로 바꾸어 넣은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말라기 3:17절이 옳습니다. 원작자의 인용 성구를 우리 맘대로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총회의 이름으로 총회신학부에서 찬송가공회로 건의를 드려야 고쳐질 것 같습니다. 그래야 교단신학도 바로 설 것입니다. 너무 작은 문제라고 간과하시지 마시고, 꼭 기억해 두셨다가 신학부에서 총회 이름으로 찬송가 공회에 건의를 드려서 고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안에서 총회와 신학부 여러분들의 수고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출판국 그리고 예장출판사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대한예수교 장로회 군산노회 소속 성도교회
(우)573-360 군산시 미룡동 860-7 성도교회, T. 063-461-2466)
신소섭 목사(H. 017-287-0379)
E-mail : green-sss@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