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주 목사(59)는 좀처럼 교회를 떠날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제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어떻게 키워온 교회인데, 은퇴하는 65세까지 눌러앉자"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설교나 전도 등 일반 목회는 충분히 하겠는데,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일이 잘 안잡혔습니다. 그래서 고민과 갈등이 많았습니다." 최 목사는 "지난해부터 교회의 '선(線)'이 안잡혀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교회를 젊고 유능한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최 목사가 담임으로 일해온 지난 6년 동안 서울 능동 '서울시민교회'는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교육관 건축, 교회 개척, 정신지체아 학교와 문화교실 운영, 노인대학 설립 등 계획했던 일들이 순조롭게 이뤄졌다. 성도 수는 1600여 명으로 6년 전 부임했을 때보다 60% 정도 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도전할 만한 일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서울 방학동 '푸른숲교회'. 78세의 어느 노목사가 은퇴하면서 최 목사에게 이 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최 목사는 서울시민교회 부목사 중 한 명을 보내려고 했으나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택도 없고, 교단에 소속되지도 않은 성도 40여 명의 작은 교회다. 할 수 없이 친구인 다른 목사에게 설교만 해달라고 했다. 몇 개월이 지났다.
자신이 이 교회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간적 번민이 그를 괴롭혔다. 무슨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쫓겨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몇 날 며칠을 계속 기도했다.
"당회를 소집해 장로님들에게 결심을 밝혔습니다. 다들 놀라더군요. 만류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결심이 굳은 것을 보고 더이상 말리지 않더라고요. 내려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지난주일 예배시간에 성도들에게 얘기했다. 교회는 눈물바다가 됐다.
그는 경북대 농화학과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신대 대학원에 들어갔다. 젊은 시절 결핵에 걸려 각혈을 하면서 50세까지만 살게 해주시면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50세가 훌쩍 넘은 그는 "지금 덤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교 졸업 후 서울 등촌교회 부목사로 일하다 1984년 독일로 건너가 프랑크푸르트 인근 마인츠 등지에서 5년 만에 4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이 지역 교민들 대부분이 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 그는 부목사들에게 4개의 교회를 모두 넘기고 귀국했다. 귀국해서는 성도 30여 명의 서울 북가좌동 새서울교회를 맡았다. 3년 만에 성도 수를 120명으로 늘리고, 교회당도 넓혀 이사한 뒤 경남 마산의 다른 교회로 내려갔다. 그는 지금껏 교회를 세운 뒤 내려놓고 떠나는 생활을 계속 해왔다.
최 목사는 지난 20일 주일 고별설교에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상황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면서 "포기하고 내려놓도록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7월 23일 수요일저녁 예장고신 김성천 총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환송예배가 끝난 뒤 푸른숲교회로 간다.
신종수 기자 jsshi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