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여러 곳에 내린 폭설 탓에
칼바람이 엄청 차갑게 불어오던 오후였습니다.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의 소도시이지만
비록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열정적으로 합창활동을 하는 후배 초청으로
그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될 후배의 말에 따르면, 교회에 다니는 처녀를 며느리로 택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가족들의 엄청난 반대 때문에 아들의 결혼이 성사되기까지 많은 사연이 있었다고...
그런데
정작 그날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는
동화책에 나오는 선녀처럼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죠.
유명세를 가진 대학교수였던 주례 선생님은 신랑의 대학시절 은사이기도 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몇 올 남지 않은 노 교수님의 머리는 마침, 식장 안에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형형색색의 별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이윽고
선생님의 주례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대머리를 한문으로 딱 한 자로 표현하면 빛 광, 즉 광(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들 진지한 눈빛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라는 광나는 말은 검은 머리가 저처럼 대머리가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얀 장갑을 낀 신랑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듬직한 모습의 신랑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능숙한 수화(手話)로 스승의 주례 내용을 빠짐없이 알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나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양가의 혼주도
마냥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고 있었음에...
그런 가운데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주례사를 마치셨습니다.
"여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고 합니다.
오늘 저는 혀로써 말하고 있지만 신랑은 행위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 모두 군자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두 군자님의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이만, 소인의 주례를 마치겠습니다." 예식장은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떠나갈 듯했고...
승용차로 빽빽했던 시골 예식장을 벗어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CD로 들으며 집을 향해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때,
이날의 결혼을 축복하듯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휘날리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뜨겁게 흘러내리는 감동의 눈물과 함께
자꾸만 차창이 얼룩지면서 흐려졌습니다.
그토록
흔하게 부르고 듣던 찬송소리도,
기도와 설교마저도 없는 시골의 예식장이었어도
노 스승의 주례사는 정말 훌륭했고,
그 주례사를 수화로 신부에게 옮긴 신랑도 훌륭했지만
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한 양가 가족들은 더욱 훌륭해 보였기에...
곳곳에서
갑작스런 폭설에 이어 밀려온 한파 속에서도
모든 이들이 즐거운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지만,
서울의 한 폭판 국회의사당에선
반대를 위한 반대를 즐기는 무리들이
연일,
말싸움과 몸싸움으로 끊임없이 다투고 있는 요즘...
좋은 스승도, 착한 제자도,
선한 이웃도 흔하지 않은 이 시대에 살면서
감동 넘치는 주례사와 더불어 그 감동의 말을 참된 맘으로 주고받던 신혼부부의 복된 새 가정을 축복하며
자신을 태워 이웃에게 밝음과 따뜻함을 전하려 끝없이 녹아 흘러내리는 촛농보다 더 뜨거운 하늘의 은총이 끝없이 넘쳐나길 조용히 기원해본 감동의 결혼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진심(眞心/참된 마음)이 감동으로 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가운 칼바람이
모두의 몸과 맘을 움츠리게하는 날,
이웃으로부터 뜨거운 감동이 느껴진다면,
끝없이 감동으로 대해주세요.
복된 크리스마스와 희망의 새해를 앞두고 일찍 방학에 들어간 전국의 노래친구들에게 띄울 새해 2010년 1월호 단보 '찬양하는 순례자'를 편집하면서... -DEC150/늘 노래하는 큰 머슴-
♪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Sarah Bright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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