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내가 태어나 자랐던 신암동,
어릴 적 동네이름은 대구시가 시작된다는
시 머리(지금 북구 대현동) 큰 길가였습니다.
옛 신광교회로 가는 긴 골목길에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낡은 리어카를 끌던 엿장수 아저씨가 있었는데
돈보다 폐품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고 폐품 쓰레기 따위만을 받았습니다.
헌옷이나 낡은 고무신,
빈병, 헌책, 찌그러진 양재기, 깨진 그릇 등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만 받고 엿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3대 목사가문의 막내손자라고
한없이 귀여워하며 늘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굵은 주름살투성이의 할머니가 헌 물건을 찾아주어
몇 가락의 엿을 바꿔 먹을 때의 그 기쁨은...
요즘처럼
별난 과자나 음료수도 흔하지 않던
6.25전쟁 이후의 1950년대였기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감칠 나고 달콤한 엿가락을 먹는 즐거움은
하늘에서 내려진 평화의 선물처럼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린 시절 엿장수 아저씨는 신기하게만 다가왔고,
긴 골목길 밖에서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늘 입에서 군침이 돌며 할머니 눈치를 살폈고...
그런데 오늘,
사순절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옛 골목길을 따라
차를 운전해 큰 길로 돌아 나오면서
문득 옛적 엿장수아저씨의 가위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생각이 떠오르더니,
차창에 차갑게 흘러내리는 빗방울 마냥
어느새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더군요.
그리고 선득
예수님도 엿장수 같은 분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고물과 폐품 낌이 쓰레기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무거운 죄 보따리 한숨 고통 눈물을
그 어떤 예물보다 귀하게 받으셔서
용서, 자유, 기쁨, 행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고통, 눈물, 근심보따리를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나오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 주위에는
자신의 고통과 죄와 한숨을 그냥 담아두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따리 째
그걸 주님께 가져가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처럼
전국적으로 철지난 봄눈과 비가 내리는
사순절(四旬節, Lent)기간이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안으시는
예수님의 한없는 사랑과,
가마득히 멀어져간 그 옛날
변방 대구의 시머리(신암동) 큰 길 한 모퉁이에서 살며
끝없는 사랑과 기도로 막내손자를 귀여워해주시던
할머니 생각과 함께,
문득
옛 신광교회 앞 긴 골목길을 오가던 엿장수가 떠올라
이 글을 썼습니다.
♡ 늘 노래하는 큰 머슴 박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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