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내리는 점심 때 의자가 네 개뿐인, 골목 안 언덕바지 허름한 돼지 국밥 집에 들어갔었다.
뜨거운 국물에 부추를 듬뿍 넣고 휘휘 저은 뒤 두어 수저 드는데 일병 계급장을 앳된 모습의 군인과 그의 아버지인 듯 한 아저씨가 들어왔다.
한쪽 수족이 불편한 아저씨는 나도 잘 안다. 우리 동네 골목을 다니며 종이를 줍는 분이다. 새벽 운동 길에 마주치면 눈인사하는 터라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젖은 모자를 벗으며 깍듯이 인사했다. “ 우리 아들이라오, 휴가를 나와서….”
빗물이 줄줄 흐르는 유리창 너머로 그가 끌고 온 리어카가 보였다. 커다란 냉장고 포장 상자가 가득 실렸다. 누군가 뒤에서 밀어 주지 않으면 경사진 이곳까지 오기 힘든 짐이다. 누군가는, 아마도 아들이지 싶다.
“어여 먹어라. 배고팠지?” 아버지는 자꾸 사양하는 아들에게 자신의 국그릇에 담긴 고기를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아들이 국밥 먹는 모습을 보며 자꾸 웃었다.
그의 사정은 동네 사람이 다 안다. 직장에 다니다 풍이 와서 3년간 병원에서 지냈고, 그사이 아내는 집을 나갔다. 하나뿐인 아들 학비 대느라 고물 행상을 했다. 아저씨에게 아들은 삶을 지탱하는 희망 꽃이다. 오늘은 그 꽃에 거름을 주려나 보다.
아저씨 형편을 아는데도, 국밥 고기를 평소와 다름없이 준 식당 주인 할머니가 야속했다. 고기 몇 점 더 준다고 손해 보지 않을 텐데….
그러나 기우였다. 부자(父子)를 묵묵히 보던 할머니는 찬장에서 양푼을 꺼내 그 안의 고기를 부자의 국그릇에 수북이 넣었다. “ 그냥 들어요, 내 돈 안 받을 테니.”
옆자리에 국밥을 먹는 부자(父子)보다 내 눈시울이 먼저 뜨거워졌다. 눈물방울이 맺히기는 아들과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먼저 국밥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계산하려고 지갑에서 만 5천 원을 꺼내어 디밀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한 그릇에 5천 원인데?”라며 만 원을 도로 내밀었다. “저 아저씨와 아들 국밥 값과 함께인데요.” 턱으로 부자(父子)를 가리키며 조그맣게 말하고는 재빠르게 식당을 나왔다.
아저씨의 리어카 위로 깨알 같은 초여름 빗방울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초여름답지 않은 차가운 날씨에도 담장 곁의 보라 빛 여름 꽃 넝쿨이 잔뜩 빗물을 머금고 싱그럽게 열매를 알알이 품고있었다.
돼지 국밥을 맛있게 먹는 부자(父子)에게도 화사하게 갠 날이 얼른 찾아와 진짜 '부자(富者)'가 되면 좋겠다는 축복의 기원이 눈물고인 내 맘속에서 우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