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죽순이’서 ‘밥퍼’로… 43세 싱글녀 임수지씨 “봉사요? 기쁨을 얻으러 가죠”
국민일보 | 입력 2010.09.15 17:51 | 누가 봤을까?

파란색 BMW 3시리즈는 튀었다. 노랑 티셔츠에 파랑 야구모자, 빨강 조리신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하다못해 이메일 주소도 튄다. 'redrim@…'
그녀와 친구하러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관심사에 적힌 단어는 '네트워킹.' 43세의 싱글녀 임수지(본명 임은경)씨. 본명보다 '수지'로 불리길 원하는 그녀는 만나자마자 페이스북 얘기를 늘어놓았다. "페이스북 하다보면 중독된다, 페이스북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됐다, 친구 중엔 외국인, 언론인, 목사도 있다, 하지만 진짜 친해진 친구는 10명뿐(?)이다."
그녀는 페이스북 친구 사이에서 인기가 꽤 높은가 보다. 화보를 연상케 하는 사진에 뭇 남성들은 '더더욱 만나보고 싶다'는 덧글을 달았다. 임씨는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청담동 고급 요리집, 이태원동 H호텔 바 등을 주로 찾는 듯했다.
"저요? 대학 때부터 나이트 죽순이었어요. 주 5일 나이트, 주 7일은 남자 바꿔 가며 만나고 뭐 그런. 지금도 춤 좋아해요. 내일도 'JJ'에 가기로 했어(귀엣말로). 밤 문화의 흐름을 책으로 써도 될 거예요. 한때는 쥴리아나가 요즘은 리베라호텔 나이트가 대세죠."
순식간에 화제가 바뀌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을 주워 담느라 바빴다.
외제차를 몰고 다니고, 청담동 아파트에 독립해 살며, 미식가에, 춤을 사랑하는 활달한 40대 싱글여성. 케이블TV에 나올 듯한 '골드미스'를 만난 거다. 그런 임씨를 만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량리 쌍굴다리 옆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에서였다.
"봉사? 기부? 그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라 그래. 나랑 무슨 상관이야. 다 팔자야. 뭐 이런 식? 그러다가 사업을 접고 취직한 회사도 그만두면서 '봉사나 해볼까'라며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시작했어요."
어느 봉사자가 임씨처럼 말할 수 있을까. 그때 밥퍼 한 직원이 이마에 난 땀방울을 손으로 훔쳐내며 그녀에게 화풀이를 했다. "(컵이) 없어. 또 가져갔나봐." "한 개도?" "왜 자꾸 가져가는 거야. 어휴." "다 필요해서 가져가는 거지! 내가 사줄게. 사줄 테니까 저기 있는 컵 써." 컵 도둑에 화가 단단히 난 그 직원은 임씨의 말을 듣더니 웃으며 돌아섰다. 그 직원도 한때 노숙인이었다.
청량리 밥퍼에 임씨가 봉사자로 참여한 지는 1년이 채 안 됐지만, 임씨는 직원처럼 말하고 직원처럼 일을 거들었다. 이미지 관리 차원 치고는 '헌신적'이다.
"제가 처음 밥퍼에 온 날이 어느 기업에서 30명이 오기로 했는데 안 와서 '빵꾸' 난 날이었어요. 새벽 5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들 기다리고 계시는데. 그 분들 하루 한 끼로 허기 채우는 분들이거든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1000여명을 먹여야 하는데 말예요."
직원들까지 총동원된 그날 임씨는 신들린 듯 식판을 나르고 밥을 푸고 설거지까지 마쳤다. 봉사 한 번에 몸이 아파 이틀이나 링거를 맞고 누워 있어야 했다는 임씨.
"아파 죽겠는데 이상하게 밥퍼 사람들이 생각나고, 식사하러 오신 분들 얼굴이 떠오르고.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오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녀는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누려봤다고 했다. 유복한 가정에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대학 졸업 후 웨딩컨설팅사를 차리면서 대한민국 1호 웨딩컨설턴트로 주가를 날렸다. 회사가 인수 합병되는 과정에서 직원들만 남기고 창업자인 자신이 나가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고급 미용 프랜차이즈의 웨딩 컨설팅 이사로 재기하면서 억대 연봉은 유지했다. 갤러리아 명품관과 압구정 현대백화점 VIP였으니 씀씀이가 오죽했을까.
하지만 허망한 나날이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자살시도까지 해봤더랬다. 도대체 무슨 일로?
"미용실 프랜차이즈를 직접 차렸다가 동업자를 소송하는 일이 생겼죠. 어찌됐건 망해서 빚도 많이 졌어요."
돈보다 무너져 내린 자존감이 문제였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찾아왔다"고 임씨는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죽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119 구급차로 실려도 갔다. 공황장애도 함께 왔다. 라면을 사러 나가면 1시간을 헤매다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 와중에도 살아보겠다고 보험회사 펀드영업을 시작했다.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해 본 임씨에게 보험일은 치명적이었다. 우울증은 극에 달했다. 휑한 가슴은 명품이라도 사들여 채워야 했다.
현재 임씨는 백수다. 성혼컨설팅사 창업을 준비하곤 있지만 놀고 있으니 남들 눈엔 딱한 신세다. 하지만 임씨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다. 5000원짜리 티셔츠에 6000원짜리 반바지를 입어도 자신감이 넘친다. 그리고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했다.
"봉사라는 말은 싫어요. 기쁨 얻으러 가요. 전 그렇게 말해요. 그 뿌듯함을 말로는 표현 못합니다. 돈 1000만원 벌었을 때 행복했냐고요? 전혀!"
백수지만 봉사하러 가면 기쁘고, 나눌 수 있어 좋고, 밥 줘서 좋다며 웃어 보였다. 임씨는 노인복지관에서 시작해 밥퍼, 유치장, 영아원 등 점점 더 '하드'한 봉사로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그리고 명품 살 돈은 봉사를 위해 쓰고 있다.
2010년 8월 어느 날. 그녀에게서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너무 부끄럽고 부족하지만 저처럼 세상에서 상처받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고, 섬기고 나누면 행복해지고 새로운 희망도 찾게 된다는…, 저희 경험으로 힘을 주고 싶고…. 나눔과 섬김의 손길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추신: 제가 지금 교회 분들과 서초노인복지관에 설거지 도우미 하러 가야 해서···. 나중에 또 보낼게요^^.'
글 이경선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bokyung@kmib.co.kr 국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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