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울게 한 장로님은… ♡
그 어르신과의 만남은
40여 년 전 한창 방송현업에 미쳐있을 적에
YMCA를 통해 시민사회 봉사활동을 한답시고
자문을 얻기 위해 시작된 첫 만남이
와이즈멘클럽 활동과 장로합창단 창단으로 이어져
오늘에 까지 이르렀음에…
갓 마흔의 젊은 나이에 장로임직을 받은 나를
대구 땅에서 장로합창단을 만들자고 찾으셨고,
그리고
흰머리 굵은 주름살 돋보기안경 쓴
가마득히 연세 많은 장로님 23명과 어우러져
총회를 거쳐 첨으로 하모니를 다듬기 시작한 것이
바로 27년 전 1984년 6월 6일(水) 밤이었다.
나 보다 스무 살 가까이 높으신 그 어르신은
창단단장 겸 초대단장님으로 모셨고
철없이 젊은 방송쟁이 장로는 바리톤 독창자로 활약하며
“못 말려 단장”이란 극성스런 별명을 가진 그 분을
그림자처럼 따르기를 15년…
새천년이 열리는 2000년 1월을 맞으면서
당신의 나이가 일흔다섯이 되었기에
가까이서 나를 지켜보며 15년 전부터 점찍었다면서
단장을 맡으라고 여러 날 동안 적극적으로 권하시기에
몇 차례나 강하게 사양을 했어도
기어코 만장일치 추대로 이끄셨다.
그로부터 11년의 긴 세월동안
그 분이 넘겨준 힘이 넘친 단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열과 성을 다해 거친 몸짓으로 대장합을 이끌다보니
160여 명의 대단원과 함께 늘 하늘 우러러 노래하는
"더 못 말려 단장"과 "큰 머슴"이란
더 극성스런 두 개의 별명을 얻게 만드셨고…
일찍이 그 어르신은 1926년 9월 26일
서울 종로 사직동에서 순교를 당하신 목사님 아들로 태어나
강원도와 평안남도 등지를 이사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방 후 평양과 황해도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평양의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21세 때 단신 월남하시어
경북의대에 편입하고 6.25전쟁 때는 군의관으로도 활약하셨다.
1953년 경북의대 졸업 후 대구동산병원 소아과를 시작으로
초대 경주동산병원 원장을 거쳐 대구 남산동에서
오랜 날 송소아과 진료를 통해 명의로 존경받는 동시에
남문감리교회 장로로써 '東山'이란 아호로
국제와이즈멘클럽과 YMCA, 한일의사축구단 등의 대표자리를 맡아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기셨고…
여든 나이를 넘기도록 의료자원봉사를 계속하시면서도
삶의 최우선을 오직 대구장로합창단에서의 찬양연주에 두고
70세 넘은 단원부부모임인 골든 벨 동아리를 비롯해
볼링클럽까지 조직해 찬양과 친교를 활발하게 해오시다,
2년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서
매일 하시던 조기축구와 조깅도 멈추시더니,
'췌장암’이란 병마와 싸우며 수술 후 확률 낮은 생존수치를
강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꾸준히 찬양활동을 하셨음에…
지난 해 5월의 창단26주년 정기연주회와
10월의 대한민국 창작합창축제 연주무대 맨앞줄에 서는 것이
생의 마지막 연주라시며 온 가족을 두루 초대하셨던 어르신,
마치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시들어지면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숯덩이가 되어 꺼져가는 그 때,
병실을 찾을 때마다 초췌해져가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아직도 내면에 식지 않은 찬양의 열정을 느끼면서
고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고…
지난 4월 7일(木) 봄비 오는 날,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시면서 간호하던 따님에게 부탁해
휴대폰으로 힘없이 낮은 목소리로 직접 말씀을 주셨다.
"박단장~ 힘이 자꾸 떨어지네,
대장합 단원들을 만나고 싶고
찬양 함께 부르고 싶어요!"
"사랑하는 단원들에게
기도 부탁해요~
그리고 박단장, 제발 건강 해야돼요!"
이 말씀을 남기고 일반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신 후
상태가 좋지않아 면회가 어렵다는 소식과 함께
무거운 맘으로 어르신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했었는데…
-대장합150/하늘 우러러 늘 노래하는 큰 머슴-
"천하에 범사가 기한(期限)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 /Sarah Bright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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