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목욕탕에서... ♧
지난 주말의 이른 오전, 큰 수술 후에 후유증으로 회복을 위해 집에서 쉬고 있는 단원을 심방하려고 미리 시간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거리가 다소 멀리 떨어진 곳인데다 주말이면 늘 도로가 많이 막히는 지역이라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서 달려 가보니 예상보다 길이 잘 뚫려 40여 분이나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한 터라 차안에서 기다리다 길 건너에 대중목욕탕 간판이 보여 주일을 앞둔 주말이자 약속시간까지의 지루함도 없앨 겸 곧장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연휴를 맞은 주말이라 조금 붐볐지만 새로 지은 건물이어서 실내도 널찍하고 깨끗한데다, 요즘 유행하는 최신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자투리 시간에 간단하게 샤워를 하기에 딱 좋았다.
한참 샤워를 하고 있는데, 탕으로 들어서는 부자(父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든이 훨씬 넘은 듯한 나이에 걸음걸이도 불편하고 초췌한 부친의 팔짱을 끼고 내 옆으로 다가오는 40대의 젊은 남자는 매우 환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샤워기의 물을 따뜻하게 조절하여 나이 들고 병들어 꾸부정하고 바싹 마른 늙은이에게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수건으로 문지르는 젊은이는, 연신 즐겁고 기쁜 모습으로 말을 건넨다.
“아버지, 물 안 뜨겁지 예? 시원하지요? 이래야 피부가 고와지고 빨리 병이 낫지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거친 몸놀림이었어도 너무 정겹고 따뜻하게 보여 계속 지켜보았다.
온몸에 비누칠과 샤워를 마친 아버지를 껴안고 가까이에 있는 앉은뱅이 플라스틱 목욕의자에 앉힌다.
그러고 나서 아들은 눈 깜짝할 사이 마치 소나기에 몸을 적시듯 빠르게 비누칠과 물만 뒤집어쓰더니 곧장 쪼그리고 앉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갔다.
면도를 하면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그들을 따라 옆자리로 옮겨갔고….
“아버지, 이제 등 밉시데이∼ 안 아프게 살살 밀게요!” “아버지, 안 아프지요? 기분 시원하고 참 좋지요?” “팔 약간 들어보이소∼” “이제 머리 숙이고 머리 감읍시데이∼”
한참동안 아들의 도움으로 온몸을 씻은 아버지가 어둔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던지셨다.
"야야∼, 그만 됐다! 이제 니도 좀 해라∼ 나는 이만하면 됐다카이!” “아니라예∼, 나는 집에 가서 씻으면 되고요, 자∼ 아버지, 이제 두 팔 올려가며 운동 한 번 해봅시데이!” “아버지요, 팔 쭉∼ 쭉∼ 아이고 잘 하네요, 다 낫겠심더!”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대중목욕탕 안에서는 그냥 무심코 지나쳐 볼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일지라도 이런 섬김을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 자신이기에…,
더욱이 나의 뇌리에는 평소 찬양을 삶의 우선순위로 여기시다 지난 4월 13일(水)과 17일(主日)에 연이어 숙환으로 별세하신 故 송창화 장로님(Bs/86세)과 故 김호진 장로님(T2/78세)의 인자한 생전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샤워를 하면서도 눈과 귀를 그들 부자에게서 잠시도 멀리할 수 없었다.
병들어 곤고(困苦)해진 부모님 모시기를 외면하는 요즘 세태 속에서,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이,
마치, 한 편의 감성 깊은 휴먼드라마를 보듯 가슴이 뭉클해지더니 어느 새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면서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
“노환(老患)의 아버지를 이토록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는 아들은,
하늘로부터 큰 복을 받은 자식이 분명하겠구나!”라고 생각하다 벽시계를 보니 약속시간이 10여 분이나 훌쩍 지났음을 알고 허겁지겁 목욕탕을 나왔다.
목욕탕에서의 열기가 그대로 몸에 베여있어 연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닦았는데, 실은 땀방울보다 두 눈에 고였다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더 많았음에…,
이 날은, 가정의 달이자 사랑의 달인 5월을 맞아 몸이 아파 고생하는 이웃들을 찾아 위로하는 것이 섬김의 작은 축복임을 깨닫게 하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 ☞ 늘 하늘 우러러 노래하는 큰 머슴/amenpark150@hanmail.net

♪ You Raise Me Up/Celtic Woman ♪ "날 일으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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