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할아버지께서 오늘 돌아가셨대.”
지난 13일 서울 홍은동 홍연초등학교 2학년 5반 교실. 박남희(49·창천감리교회 집사) 교사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큰 반응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 다시는 동화 들려주러 오실 수 없어.” 이 말에 비로소 울상을 지으며 아이들은 술렁였다. “방학 끝나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동화 할아버지’는 13일 오전 78세 나이로 소천한 서울 창천감리교회 최영일 장로다. 이 학교에서 3년간 월 1회씩 도서실에서 1~3학년들에게 동화를 들려줬다. 독특한 소품도, 의상도, 책도 없이 그저 손짓 발짓과 억양으로 표현해 내는 동화에 아이들은 푹 빠져들었다. 창작동화를 바탕으로 ‘효도’ ‘우정’ 등 가치를 담아 재구성한 내용을 들려주곤 했는데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싸인해 주세요”라고 조를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최 장로는 본래 서울대 수의학과를 졸업한 수의사였다. 목사의 아들로서 중학교 2학년부터 교회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어린이와 함께 하기를 좋아했던 그는 58년 한국일보, 64년 동아일보 주최 동화구연대회에 1위로 입상한 뒤 본격적으로 구연가의 길에 뛰어들었다. ‘이야기 동산회’ ‘한국동화구연가협회’ ‘색동회’ 등 일원으로 전국 학교와 고아원을 다니며 구연을 했다.
70년 감리교교회학교 서대문지방 연합회장에 오른 뒤로 교회학교 사역에도 매진했다. 서울 YMCA 이사, 기독교방송(CBS) 상무를 거쳐 서울장로성가단 단장으로 봉사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교회교육 전문가’ ‘동화구연가’로 부르기를 좋아했다. 동화 구연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다. 어른의 따사로운 눈빛과 표정, 사랑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현직에서 은퇴한 뒤로는 외손녀와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동화를 들려주곤 했는데 3년 전쯤 자택에 이웃한 경기도 안산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교사에게 “놀이터에서 동화 들려주는 할아버지 진짜 재미있다”고 한 것이 계기가 돼서 이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동화 구연을 하게 됐다.
홍연초 박 교사는 “교회에서 얘기를 듣고 저희 학교에도 와 달라고 부탁드리자 흔쾌히 응하시고 3년을 한결같이 해 주셨다”면서 “아이들이 ‘할아버지 때문에 학교가 좋아졌고 행복하다’고 할 정도로 좋은 영향을 끼치셨다”고 회상했다.
2년 전 다발성림프종으로 수술을 하면서도 구연을 멈추지 않았지만 지난달 합병증이 오면서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어린이들과의 “다음 학기에 만나요” 약속을 지키지 못 하게 됐다.
부인 송명자(69) 권사는 “어린이들은 꿈을 많이 가져야 하고 그래야 커서 하나님께도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동화를 사랑하셨다”고 전했다.
시신은 평소 신념대로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됐다. 12일 정오에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추모예배에서 창천감리교회 서호석 목사는 “하나님을, 어린이를 뜨겁게 사랑하셨고 그 사랑을 몸으로 직접 베푸신 분”이라고 추모사를 전했다. 장례예배는 15일 오전 9시30분 교회 대예배당에서 진행된다.

☞ 여기를 클릭하면 DEC(대구장로합창단) 홈페이지로 옮겨집니다 ☜ -www.dechoir.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