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여섯 살 꼬마일 때 다섯 살이던 엘리자베스를 만나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그녀가 장성할 때까지 30년을 기다려 결혼에 골인했다. 트루먼의 아내 사랑은 유별났다.
1945년 파리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아내 선물로 샤넬 향수를 구하기 위해 암시장을 뒤지기도 했다. 아내와 연애편지를 3000통 이상 주고받은 트루먼은 평생 다른 여자는 곁눈질도 안 했다고 한다.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말이 있다. '함께 늙고,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이다. 트루먼 같은 잉꼬부부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신혼부부라면 누구나 이를 꿈 꿀 것이다.
실제로 해로동혈은 결혼 주례사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는 원래 덕담이 아니었다.
중국 황하 유역의 비극이 담겨있는 탄식의 단어였다. “북소리 둥둥 울려/무기 들고 싸우러 나간다./...죽으나 사나, 만나나 헤어지나/ 그대와 함께하자고 언약했지/ 그대의 손을 잡고/그대와 함께 늙겠노라고” 그러나 전쟁에 나서는 병사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詩의 다음 부분이다. “아아, 헤어져 있어/ 함께 늙지 못하고/ 아아, 우리의 언약을 이룰 수 없네.”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필부(匹夫)에겐 아내와 한 무덤에 묻히는 것도 필생의 소망이 된다.
시경<詩經>의 대거(大車)라는 詩다. “큰 수레 덜커덕 덜커덕/... 어이 그대 생각 않으랴만/ 살아서는 한 집에 못 살아도/ 죽어서는 함께 묻히리라.“ 함께 늙고, 함께 묻히는 것은 동서고금 모든 부부의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삶 또한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라, 해로동혈은 여전한 비원(悲願)으로 남아 있다.
“여보, 왜 말이 없소.” 가수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다. 사별의 아픔을 담은 요즘 노래지만,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난리에 60년 지기 동 창 부부 3쌍이 변을 당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암흑 속에서 흙 범벅 아내를 부둥켜안고 “여보, 죽지 마”라고 오열했다고 한다. “해로동혈”이라는 <詩經>속의 비가(悲歌)는 이 시대까지도 메아리치고 있다. 8월인데 아직도 비가 내린다.
경향신문 김태관 논설위원 (여적餘滴)에서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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