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이민 온 부모의 가난 때문에 1946년 장마철인 7월 6일 뉴욕에 있는 자선병동에서 태어났다. 아마추어 의사의 실수로 왼쪽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고 더군다나 커가는 동안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있었다.
12살 때는 그의 부모가 이혼하면서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인맥도 자본도 없어 출연교섭도 별로 없었다. 단역 배우로는 살기 힘든 절망의 상황이었기에 그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영화관 안내, 수위,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배우 보디가드...
어느덧 배우로써는 팔리기 힘든 서른 살. 아내는 임신 중이었고 수중에는 불과 106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안 되겠다, 이번에는 끝을 봐야겠다!" 그는 비장한 각오로 창문을 걸어 잠그고 전화 코드까지 뽑아 버린 채 씨나리오를 써냈다.
그리고는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에원하듯 설득했다.
"이 대본을 사용해 주십시오, 대신 나를 꼭 주연으로 써야 합니다!"
무명배우가 쓴 대본과 그를 주연으로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영화사 제작자들은 "좋다, 대신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라!"는 조건으로 이 영화는 고작 28일 만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1976년에 개봉된 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었고...
197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자주연상 후보에 올라 최고 작품상의 영예를 거머쥐면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 영화의 이름은 <록키>.
그리고 그 무명의 남자 배우의 이름은 훗날 <록키> 시리즈에 이어 <람보>시리즈의 감독과 주연까지 맡아 일약 흥행영화의 황제로 등극하며 세계적인 대 스타가 된 '실버스타 스탤론'이다.
- 새벽편지에서 -
"인생은 난타전이야 얼마나 센 펀치를 날릴 수 있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끝없이 맞으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면서 하나씩 얻어나가는 게 중요한거야"
"링 위에서 마지막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영화 <록키>에 나오는 명대사입니다
비록 지금은 직장과 사업,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 그리고 뉘에게 말 못할 가정과 자녀들 문제 따위로 어렵고 힘든 절망의 상황에서 고생을 하지만...
하늘의 도우심이 있으면 반드시 훗날 록키처럼 영광의 그날이 올 것만 같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어렵고 힘들게 이 여름 장마철을 보내고 있는 노래친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러
태풍권을 벗어난 아침녘 방문 길에 나서는... -DEC160/늘 노래하는 큰 머슴-

♪ A Summer Place / Billy Vaughn Orchestra ♪

☞ 여기를 클릭하면 DEC(대구장로합창단)홈페이지로 옮겨집니다 ☜ -www.dechoir.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