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부에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
혁명가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파리의 젊은이들이 라마르크장군의 장례식(1832년 6월 5일)을
기점으로 궐기하는 모습이 어쩌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파리의 시민들은
자신들의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 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어느 언론에서는
이 영화가 5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은
어쩌면 이번 대선에 실패한 젊은이들을 위한
힐링효과였다고도 하였다.
부인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바리케이트앞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과 실패한 혁명...
오늘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처럼
묘하게 연관되어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아니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의 젊은이는 이 나라 걱정하는 국민이고
오늘의 나이든 사람들은 이 나라 걱정하지 않는
국민이란 말인가?
정치 이야기는 아들하고도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모두가 한 나라 한 국민이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혁명적인 이 노래가 몇 번이나 울려퍼지면서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젊은이들이 궐기한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되고 있는 사건은
1832년 6월 항쟁이다.
공화주의자 학생들의 주도로 봉기했지만
실패한 혁명으로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사이에
일어났던 봉기이고
참고로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이다.
레미제라블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고 음악에 취하여도 좋고
자유가 무엇이고 우리가 오늘날
이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은 투쟁을 하였던가 하는
정치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여도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이 모든 것이 잘 어울려서 관객을
158분동안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현장에서의 생생한 라이브 녹음 때문은 아니였을까?
언제나 도전이 없이는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
도전 없는 예술이 예술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