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
퇴근시간 때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갑자기 쏟아졌습니다.
일찍 어둠이 깔리면서 찬란한 상가의 네온 빛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깨어지면서 도로를 걷던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이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뛰다가 어느 건물의 좁은 처마 밑으로 들어갔지요. 그 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한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하고, 조금 있다가 할아버지 한 분이 가세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중년의 아저씨 한 분이 들어 오셨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그 남은 비좁은 틈으로 끼어들었습니다.
마치 출근시간의 만원버스에서 처럼 작은 처마 밑은 사람들로 금새 꽉 찼습니다.
사람들은 비좁은 틈에 끼어 서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만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지만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뚱뚱한 아줌마 한 분이 이쪽으로 뛰어 오더니 이 가련하기 짝이 없는 대열로 덥석 뛰어들었습니다.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던가요?
그 아주머니가 그 큼직한 엉덩이를 들이 대면서 우리의 대열에 끼어들자 맨 먼저 와 있던 청년이 얼떨결에 튀겨져 나갔습니다.
그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쭉 훑어보더군요. 모두들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한 마디 하셨습니다. "젊은이, 세상이란 게 다 그런 거라네..."
그 청년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잠시 동안 쳐다보더니 비를 맞으며 길 저쪽으로 뛰어갔습니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4~5분 쯤 지났을까? 아까 그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우산 5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하였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청년은 다시 비를 맞으며 저쪽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청년이 건네준 우산을 쓰고 총총히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 그런 거라네..."라고 말한 할아버지만이 한참 동안을 고개를 숙이고 계시더니 우산을 땅바닥에 내려놓고는 쏟아지는 장대비 속으로 그냥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 비오는 날 운전을 하면서 방송에서 흐르던 청취자의 아름다운 사연이 너무 진하게 가슴을 찔렀기에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정리하여 옮겼습니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에다 즐거운 추석명절까지 곧장 다가오면서 오랜 날 대치상태 속에 빠졌던 남북 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 기쁘지만...
국민의 혈세로 배를 채우면서도 유독 당리당략에만 마음이 쏠려 민생을 외면한 채 싸움질만 계속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 무리의 추잡스런 몰골을 보면,
마치 먼저 온 청년을 밀쳐낸 고약한 이웃들 모습 같아 안타까움과 서글픈 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세상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라며 우산을 건네준 그 청년 같은 아름다운 맘씨를 지닌 이웃이 많아졌으면...
그리고 "세상은 다 그런 거라네..." 라고 말했다가 우산 없이 장대비 속을 걸어간 그 할아버지가 어쩌면, 바로 나였을 것 같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가을비 오는 날 이른 아침녘에, 희망의 속삭임 같았던 그 청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 ♧ DEC170/늘 노래하는 큰 머슴 ♧ -


♪ Phil Coulter Piano-Whispering Hope/희망의 속삭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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