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백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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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부가 국민에게 알려주는 보고서를 <국방백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실정 보고도 ‘백서(白書)’가 될 수는 있습니다. <나의 건강백서>는, 그러므로 나의 건강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라고 보면 됩니다.
나는 1928년생이니까 올해 88세입니다. 요새는 어떤 모임엘 가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90 넘어 100세를 바라보는 선배들도 몇 분계시지만 공공한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겠습니다.
나는 이 나이가 되었으나 아직도 매달 ‘목요강좌’와 <인문학교실>에서 강의를 해야 하고, 매주 TV의 두 가지 프로에 꼭 출연해야 하니 교직에서 물러난 지 25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날마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특이한 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 건강도 일단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일종의 유산이라고 하겠습니다. 병든 부모가 건강한 자녀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물려준 수백억의 재산을 다 날리고 객지에서 병들어 외롭게 세상을 떠난 재벌의 아들도 있습니다. 건강도 그렇습니다. 잘 가꾸지 않으면 몽땅 잃게 됩니다.
나는 다섯 시면 일어납니다. 요새는 꼭 성경을 몇 구절 읽고 internet homepage에 200자 원고지 3장 정도의 글을 꼭 써서 올립니다. 하루도 쉬지 않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정신위생을 위해서 꼭 글을 한편 내 손으로 직접 씁니다. 이런 나의습관은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그러나 80의 고개를 넘으면서부터는 나의 육신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70이 되어 앓았던 ‘50견’의 후유증으로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37:5>라는 말씀대로, 나의 오른손은 그 재주를 잊어, 오른손으로는 겨우 글씨나 씁니다.
몇 년 전에는 의사의 권고로 목과 허리의 디스크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는 지팡이를 들지 않고는 외출을 못합니다. 산에 오르는 일은 이젠 불가능한 꿈입니다. 백내장이 생긴다고 해서 안구에 렌즈를 갈아 끼웠고, 치아에 임플란트도 여러 개 하였습니다. 오른쪽 귀는 청각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 보청기를 써야하는 처지는 아닙니다. 혈당치가 높다고 해서 3개월에 한번은 ‘허갑범내과’를 찾아가 혈액검사를 해야 합니다.
아직도 ‘먹고 자고 싸는 일’에는 지장은 없지만 이런 건강상태로 100세까지 살라면 나는 “No, thank you!”입니다. 만나면, “선생님, 건강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젊은 놈들에게는 대답은 않고 그저 웃기만 합니다. 괘씸한 놈들입니다.
날마다 나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더 끌지 마시고 저를 불러가 주세요.” “I am coming, I am coming. For my head is bending low.” ‘Old Black Joe’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나도 가끔 듣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