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발장?

"혼자만 알고 묻어두기에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내가 17년 전 훔쳐 먹은 빵을 어려운 사람에게 1만 배로 되돌려 주고 싶습니다."
지난 5월 24일에 살아있는 양심을 보여준 이 시대의 장발장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훈훈함을 일깨워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2005년 5월 24일 수원 아주대병원의 원장실에 찾아온 한 30대 남자가 1000만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밀며 자신의 돈을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당부하며 털어놓은 고백이었습니다.
사연인즉,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밥굶기를 밥먹듯하던 1988년도 중학교 2학년 시절 옆집 옥탑방의 열린 문틈으로 지금 돈으로 한개 500원쯤 하는 곰보빵 두 개가 밥상 위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순간 뛰어 들어가 빵을 집어든 그는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는 것이다.
"그 빵을 먹는 동안 왜 그리 무서웠고, 먹고난 뒤에는 왜 눈물이 그렇게 났던지…언젠가 성공하면 꼭 용서를 빌고 천 배, 만 배로 빚을 갚겠다"고 눈물을 삼키며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빚을 갚을 수 없었는데, 빵을 먹은 지 한 달쯤 지나 빵이 있던 옥탑방의 가족 네 명 모두가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후 그는 "형, 오빠"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르던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계속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한 윤씨는 2002년 수원에서 사업체를 시작하여 성장을 거듭, 현재 직원 80여 명을 둔 중견업체의 대표가 되었고, 경제적인 안정을 얻은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17년 전 빚을 갚을 방법을 찾다가 교통사고환자들의 수술비를 기증하게 되었으며, 이뿐만 아니라 어려서 세상을 떠난 옆집 동생들의 이름으로 장학회도 설립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법적 책임의 문제를 떠나 17년이 지나서도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수 있는 아름다운 양심의 소유자를 보면서 양심이 무뎌져가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있는 이세대에 진정한 양심의 보루로 서있어야 교회의 모습이 온전해지길 소원합니다.
- 2005년 5월 25일 중앙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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