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1:3-18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처음에 나오미는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돌아오려 했다(20절).
두 자부의 입장에선 의무감에 묶여 따르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기회를 주었다:
"너희는 각각 어미 집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8, 9절). '
어미 집', '남편의 집'... 생각해보면 두 자부에겐 위로가 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로 돌이킨다 해도 누가 뭐라 할 것인가.
그런데 룻에겐 다른 자부와는 다른 두 가지 차이가 있었다.
첫째, 룻은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을 택하기보다는
자기의 위로를 필요로 하는 자가 있는 곳을 택했다.
위로 받을 장소와 위로 할 장소가 동시에 보일 때 룻은 후자를 택한 것이다.
실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사랑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인 것이다(고전 13:5).
둘째, 룻에겐 철저한 헌신이 있었다. 그것은 무모한 맹종이 아니었다.
룻은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17절).
이미 그녀에겐 여호와에 대한 헌신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녀가 시어미 나오미를 붙좇은 것은 인간적인 정에 매달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가려는 귀속 본능이었다고 하겠다.
그녀에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녀는 자기 중심의 인생을 벗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방향을 가졌으며 그러했기에 그녀의 마음은
시어미를 향해 사랑을 머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인생 동반자가 옆에 있는 자는 얼마나 행복자인가.
우리가 그런 인생 동반자가 되어 사람에게 참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입에는 우리를 기특히 보시는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주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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