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밖의 사람들 작성자 신종우 2006-04-01 조회 712


      괄호 밖의 사람들



      깜깜한 방이었습니다. 깜깜한 방에서 나는 벌거벗은 채 속옷을 찾고 있었습니다. 낡디 낡은 옷장에서, 손만 대면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것만 같은 서랍을 열고 속옷을 찾고 있었습니다.

      “거, 누구여?” 등뒤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돌아보니, 아… 할머니였습니다. 10 여 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셨습니다. 할머니가 거기에, 그 깜깜한 방에 혼자 누워 계셨습니다.
      “접니다, 양규입니다.”
      “니가 와, 니가 우짠 일로 여길…”

      어쩐 일로 여길 다 왔냐는 겁니다. 생전 한번도 안 와보던 네가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길 왔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서운함이 잔뜩 묻어있는 비수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치매로 고생하시던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은근히 귀찮아하고 힘들어하던 내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곤 울었습니다. 통곡을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따뜻하게 못해드린 게 생각이 나서 가슴을 치며 펑펑 울었습니다. 울다가 놀래 깨었습니다. 알고 보니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생생한 정신에 꿈이 다시 떠오릅니다. 할머니의 자리에 장모님이 오버랩 됩니다. “김서방, 니가 여기 웬 일이고?” 이렇게 물으시는 장모님의 음성이 귓가를 쟁쟁거립니다.

      그래서 또 울었습니다. 펑펑 울었습니다. 이번엔 꿈이 아니라 생생한 정신으로 진짜 울었습니다.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 후 제대로 변변히 관심 가져 드리지 못했던 장모님. 그래서 항상 큰사위인 저를 어렵게 대하시는 장모님… 그 장모님의 서운해하시는 마음이 나를 찔렀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래서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릅니다.

      조금 있으니 장모님의 얼굴 위에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 겹쳤습니다. 내가 관심 가져 주지 못했던 사람, 은근히 싫어하며 고개 돌렸던 사람입니다. 그 모습에, 그 사람의 서운해하는 마음에 또 울었습니다. 생생한 정신으로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내가 평소 고개를 돌렸던, 괄호 밖의 사람들을 그 날 하나하나 보여주셨습니다.

      그 날 숙제를 받았습니다. 괄호 밖의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교회에서 사회에서, 나름대로 친화력이 있고 열심히 섬긴다고 자부해대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전부 괄호 안의 사람들뿐이라고…

      내가 좋아하고, 내 마음에 들고,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만 괄호 안에 묶어두고 그들에게만 무한대의 사랑을 퍼부었을 뿐, 괄호 밖의 사람들,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나의 완악한 모습…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나의 발가벗은 모습, 적나라한 모습 속엔 그렇게 깜깜한 방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깜깜하고 닫혀진 방이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잠이 달아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숙제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괄호 밖의 사람들, 눈길 한 번, 조그만 관심 하나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이제 찾아보겠다고… 그래서 내 깜깜한 방에 환한 불을 켜겠다고…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길만이, 그 일만이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꿈이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꿈으로도 교훈을 주시는 하나님이, 그래서 너무 좋습니다.

      김양규 / 한의사. 부산 김양규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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