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선배 장로님의 감동적인 글 작성자 정광국 2006-04-09 조회 548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100% 만족하면서 생활하면 얼머나 좋을까? 보통 사람들의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 도는 나라와 성별 연령에 따라 다르지만 자기 현재의 직업을 60% 내외의 사람들은 만족한다고 한다. 여성이 남자보다 만족도가 높고 60세 이상과 22세 이하의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가 30-40대 보다도 높다고 한다. 영국에서 보고된 톱으로 10가지 행복한 직업을 보면 의사, 법조인, 고급 공무원, 사업가 등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첫째가 머리 만지는 미용사이다. 이들은 2등의 2배의 숫자이다. 둘째는 종교인, 세 번째는 2등과 같은 %로 요리사가 차지하고 있다. (육신의 음식과 영의 음식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만족도를 보여주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 목수, 미장이, 전기공........등의 직업이 나열 된 것을 본 일이 있다. 또 쉬지 않고 바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쉽고 한가한 일을 하는 사람 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같은 수입에서는 쉽게 쉽게 하는 일자리를 우리는 꿈꾸고 있지만, 쉽고 한가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심장 질환 발병 가능성이 바쁜 사람의 2배가 된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가 흔히 높으며 이는 수입보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나 자긍심을 갖고 기쁘게 하는 일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축복이다. 무엇이나 지금 맡은 일, 그 자체에 자긍심을 갖고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달란트의 비유이지 않을가?. 나는 내 직업(의사)을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었던 직업 중의 다른 하나는.... 웃지 마십시오......"아파트 문직이"가 다른 꿈의 한 자락이다. 내가 은퇴하기 전 63살쯤 되었을 때이다. 은퇴 후, 건강이 허락하면 내 꿈의 직업을 얼마 동안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나오는 그 직업을 가진 한국인과 결혼한 미국 분에게 문의를 한 일이 있다. 60 여세인 이 분은 "당신 같이 이 방면의 경험도 없고 나이 많은 사람"을 새 일로 시작하는 자리에 받아 줄 곳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I am sorry" 라고 토를 달았다. 하긴 지난 45년 동안 매일 수술실에서 옷 갈아 입고 환자만 보았지, 아는체 떠벌려 보아도, 가만히 생각 해보면 무얼 아는게 없다. NY Times의 구인란을 몇 페이지를 훑어봐도 내가 할 수 있는 비슷한 직업도 없다. 장터의 떡 장사 아주머니 보다도 더 인생을 모르고 경험이 없다. 내가 문지기를 소원 한것은 겸손하게 남을 도우는 직업이라서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의 존경 없이, 밑 바닥에서 사람들을 섬기고 싶었다. 그것이 '문직이' 인가? 나에게는 그렇다.아이들에게도 어른을 대하듯이, 성질 고약한 아주머니나 부랑스러운 젊은이나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한 태도를 취하여야 하는 것이 그 직업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건방지게 나 같이 겸손이 준비 된 사람에게는 이 직업이 제격이라 생각하였다. 또 잘하면 덤으로 견장을 단 제복까지 생기지 않겠는가. 얼마나 당당한가? 나는 어릴 때부터 제복에 동경심이 있었다. 그래서 10년씩 군대에 있었던가. 어떻든 간혹 만하탄의 큰 건물 앞에 제복을 입고 서 있는 Door man 들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뛴다. 그러나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이 직장은 은퇴 시 연금이나 benefits이 좋은 직업으로 경쟁이 심한 직업 중 하나이란다. 어떻든, 뭐 내 신앙이 기막히게 좋아서 그런 꿈을 꾼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새벽기도에 가서 내가 몇일 앉던 자리에 누가 앉아 있으면 겸손하게도(?) 내가 무시를 당한 듯하다. 모임에서 알듯한 젊은 이들이 이 이장로를 쳐다보고 동리 개 보듯이 그들 끼리 바쁘게 지나가면 나는 섭섭하다. "Good morning" 이라고 나이 값 하자고 먼저 선수를 치지만 속은 찝찔하다. 나는 듣기 보다 잘 난체 말하기를 좋아해서 모임에서는 집 사람이 촛대 뼈를 까기 까지 끝없이 혼자 떠드는 버릇도 있다. 예배 찬송도 신나게 큰 목소리로 부르다가 옆자리에 눈이 간다. 나도 안다. 신나는 것은 좋은데 내 노래는 곡과는 상관이 없고,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별로다. 그렇지만 나도 "주님의 한 마리 어린양"인데 체면 볼 것이 무엇인가. 약간 머리가 까지고 흰머리가 덮였다고 하나님 앞에 내 나이 자랑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속으로는 말한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가던 성가대원이었다고..... 그래서 찬송은 하나님만 쳐다 보고, 내 마음에 느껴지는대로 소리치며, 때로 눈물을 찔금 거리면서, 그런 식으로 계속 부르기로 하였다. 예배 때의 설교 시간에는 곧 잘 잔다. 오랜 훈련과정을 겪어서 옆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잘 존다. 그러다가도 찬송만 나오면 고함치며 부르다가 찬송에 혼자 은혜를 받아 찔금 거린다. 이 형편을 잘 모르시는 목사님들은 때로 자기 설교에 은혜가 넘쳐서인 줄 아시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는 분도 체험한 일이 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보시면 기가 찰 친구이다. 그래도 천국 가겠다고 교회 앞자리에 척 앉아 있다. 우리 집 사람 평으로는 지극히 은혜스럽지 못한 주책 덩어리 장로이다. 그러면서도 내 꿈은 이런 어린 아이 같은 순진함으로 사람들의 말을 믿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며 ……..그렇게 ... 유치하게?...살고 싶다. 2004년 6월 22일, Mattie Stepaneck이 죽었을 때에는 TV 토크 쇼 호스트인 Ophra Winfrey를 비롯한 많은 유명 인사들, 2 만 명이 넘는 조객들이 운집하였고 3대 방송국과 수많은 기자들이 함께 하였다. Mattie 가 생전에 "Mr. President" 가 아닌 "Jimmy" 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e-메일을 매일 주고받았던 Carter 대통령은 눈물 어린 조사를 하였다. Mattie 는 그가 원했던 대로 시인이고, 철학자요 또한 평화주의자로 모든 사람들의 아쉬움을 받았다. 사망 때, 그는 겨우 13살이었다. 그리고 이미 NY Times 의 best seller가 된 "Heartsongs"이라는 시집을 포함하여 5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 였다. Larry King live, Ophra Winfrey Show, Good Morning America 등 수많은 미디어에 출연하였고, 많은 모임에서 수 많은 연설들을 하였었다. Mattie는 Muscular Dystrophy(근육 퇴행증? = Dysautonomic mitochondrial Myopathy) 라는 선천성 질병을 갖고 태어났었다. 어머니도 같은 병을 가졌으나 성인이 되어서 발병을 하는 성인형 Muscular Dystrophy 였다. 또 Mattie 보다 먼저 태어났던 두 형과 누이는 같은 병으로 열 살도 되기 전에 모두 세상을 떠났었다. 그는 그의 시에 같이 놀아 보지도 못했던 이 형제들을 생각하고,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긍정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전신의 근육이 무력하게 되는 이 병은 어릴 때 시작되고 보통 열 살을 넘기지 못한다. 호흡근이 무력해져서 숨을 쉬기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보통 호흡기 합병증으로 죽는다고 한다. 물론 약도 없고 아직 까지는 완치법도 없다. Mattie 는 휠췌어를 타는 어머니와 둘이서 외롭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세 살 때부터 시를 썼다고 한다. 그는 9살 이후는 숨 쉬기가 너무 힘덜어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집에서 가정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어린 나이 때 부터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 갈수록 더 힘들어 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그의 운명을 도망치지 않고 마주쳐 나갔다. 나도 대학 때 소아과에서 보았던, 사다리를 잡듯이 손과 몸을 비틀면서 일어서던 Muscular Dystrophy의 한 환자를 인상 깊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It makes me feel happy" ..................... (나를 행복하게 한다) ..................... "Happy like thinking about Going to heaven when I die" (나는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내가 죽을 때,천국을 간다는 것을.) "Since I have mitochondrial myopathy, I even have a trach, a ventilator, and oxygen. Very poetic, I am, and very smart too. I am always brainstorming ideas and stories. (나는 mitochondrial myopathy라는 병을 갖었고, 기관 절개에 인공호흡기와 산소 통까지 가졌다. 나는 시적 재능 위에 총명함도 가졌다. 내 머리는 기막힌 생각들과 이야기들로 항상 폭풍이 친다.) I am a surviver, but someday, I will see My two brothers and sister in Heaven. (나는 살아있는 자, 그러나 언젠가는, 나는 천국에 있는 두 형과 여동생을 만나게 되리라.) 어린 나이에 죽음을 기다리는 삶의 아픔은 어떤 것일까? 자신을 통하여 죽음의 병이 전해져서 죽음으로 3남매를 먼저 보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 했을까? 남편은 등지고 떠나갔다. 자신조차도 자식들과 같은 그 병으로 투병 해야 했던 어머니는 어땠을까? 그리고 열살도 되기 전에 죽는다는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는 신앙의 힘이 있었다. 나는 내 형펀을 불만하고 한탄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이에, 때때로 원망하고 살고 있다. 이런 내 분에 넘치는 나의 삶을 그들과 비교하면서 내 자신을 바라 본다. 그들은 나 보다도 죄가 많아서일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냐" (출 4:11)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 이오니이까, 자기 오니이까, 그 부모 이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2-3) "내가 백아관을 떠났을 때" 카터 대통령은 조사에서 말했다. "나와 로사린은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국가들을 방문하였고 120 여명이 넘는 각국의 수장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왕들과 여왕들 그리고 수많은 대통령과 수상들과 수많은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내 생애에서 만난 가장 특별한 사람은 Mattie Stepaneck 이였습니다." Mattie 에게는 3가지 소원이 있었다. 첫째는 3살 때부터 기록해 오던 시집을 발간하는것 이었고 두 번째는 Ophra Winfrey Show에 나가는 것이었고 마지막은 그에게는 꿈의 영웅인 Carter 전 대통령을 만나는것 이었다. Matti의 시집은 발간 수 주만에 지극히 성공적 이었다. 그의 첫 시집은 100만권 이상이 팔려 나갔다. Carter 대통령 말을 빌린다면 "그 자신이 쓴 책들 다 합친 것보다 더 성공적 이었다". 그 임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창문이 있는 방으로 이사 간 것을 자랑스러워 하였다.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오프라 쇼에 출연 하였고, 그 마음의 영웅인 Carter 대통령도 만났다. 그리고 바로 예수님이 스스로 우리의 친구가 되신것 처름. 이 둘은 연령과 경험의 시공을 초월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Mattie는 나이 들어 가면서 근육은 더 약해지고 호흡도 하기 힘들어 졌다. 비록 기관을 절개하고 산소를 주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감사, 행복, 같은 단어들을 그의 시에 기록하고 있다. 흡사 매 맞고, 파선 당하며, 죽음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외치든 바울 같이, 열심히 Mattie는 그에게 허락되어진 날 들을 매일 살아 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사망하기 전 3년 동안, Mattie는 "Jimmy' 에게 e-mail을 보냈고 대통령은 성실하게 답장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편지들을 간추려서 금년 3월에는 "JUST PEACE; A Message of Hope" (오직 평화: 그 소망의 메쎄지) 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단순한 철학적인 내용부터 대통령 내외간의 개인적인 오랜 사랑까지도 기록되어 있다 한다. Mattie는 기관 절개를 하고 산소 통을 휠췌어에 싣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Muscular Dystrophy 환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과 함께 평화를 호소하는 공중 연설과 글들을 쓰면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3살때 부터 시와 짧은 글들, 엣세이 들을 녹음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1,250 권이 넘는 수많은 책들을 독파 하였다고 한다. 그는 사망 당시, 11 학년의 과정을 집에서 배우고 있었으며 동시에 몇 개의 대학 강좌를 수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글들은 내용은 많은 주제들이 있었다. 그것은 슬픔, 자연, 사랑, 육신의 장애, 희망, 인생, 그리고 평화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그를 보면, 행복과 감사란 것이 많이 가졌다고 오는 것도, 건강하다고 차지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Future Echo (다가 오는 메아리) When I swing I go everywhere And yet Nowhere at all (그네를 타면 나는 어디나 갈 수 있다. 그런데도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It's like being In the middle Of an echo That hasn't let me yet, And so, It hasn't come back. (이것은 아직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메아리의 중간에 서 있듯 그렇게 아직도 다가 오지 않는다) I am between Yesterday and tomorrow.... (“나”라는 것은 어저께와 오늘 사이에 있는 것.....) But still in my life of now, When I swing, I feel happy, And excited, and peaceful. (그러나 아직도 내 삶은, 그네를 타면, 나는 행복하고, 그리고 흥분과, 평화를 느낀다.) Mattie는 기독교(카도릭) 신자였다. "그는 전신의 근육이 무력해 지는 병 속에서도 결단코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었다.” 어떤 친지가 기록한 그의 신앙을 평한 한 구절이다. 하나님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삶을 Mattie에게 주었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그에게 허락 되어진 날들을 충성스럽게 살고 갔다. Carter 대통령은 그의 조사의 마지막을 다음 같이 끝 마치고 있다. "내가 알기에는 어느 누구도 Mattie 보다 더 힘들게 이 생을 살고 간 사람은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나는 이 큰 강당에 있는 누구도, 어머니 Jeni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엔 그런 고통을 견디어 내신 분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그 주님은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Mattie를 볼 때면 그의 어린이로서의 특성과 한편 지혜 있는 성인으로서 자각되는 두 모습을 언제나 봅니다. 그 같이 우리가 보는 예수 그리스도도 참 인간이며 동시에 참 하나님의 두 모습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는 신약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의심 할 바 없는 하나님의 사자요 하나님의 천사였습니다........ 그가 바라던 장래, 꿈꾸던 7자녀와 손자들을 가지는 대신 그의 Heartsong(마음의 노래 = 그의 시집 이름)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는 고통이 없는, 평화의 왕과 함께 하며, 또 하늘 나라의 크다란 환영의 포옹을 받을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3살의 Mattie가 받은 달란트는 우리 보통 사람들이 받은것보다 많은 것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기쁘게 그 달란트를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충성스럽게 그 달란트로 살다가 갔다. 그는 Muscular Dystrophy Society를 위해서 일을 하였고, 모금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멧세이지들을 전파 하였다. HEAVENLY GREETING Dear God, For a long time, I have wondered about How you will meet me When I die and come to Live with You in heaven. I know You reach out Your hands to welcome Your people into Your home, But I never knew if You Reached out Your right hand, Or if You Reached out Your left hand. But now I don’t have to Wonder about that anymore. I asked my mommy and She told me that You Reach out both of Your hands, And welcome us with A great big giant hug Wow! I can’t wait for my hug, God. Thank You, And Amen. 사랑의 하나님, 오랜 동안, 내가 죽어서 당신과 함께 살려고 하늘 나라에 갔을 때 당신이 어떻게 나를 마중 할지를 생각했읍니다. 나는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집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영의 손을 내어 밀 것은 알았으나 오른 손을 내어 밀지 혹은 왼손을 내어 밀지는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는, 이 것을 더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두 손을 내어 밀고서 우리를 크다란 포옹으로 환영 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와우! 내가 가질 포옹이 기다려 집니다. 하나님. Thank You, 그리고 Amen. 나에게는 Mattie도 지극히 존경스럽지만 Carter 대통령의 겸손함과 그 신실함이 부럽다. 오는 부활절을 생각하고, 나이 70이 넘어선, 아직도 원숙되지 못한 나를 돌아보면 가슴이 아프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 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시들의 번역들이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원문에서 은혜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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