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예배 호칭에 대해
작성자
청지기
2006-06-03
조회
545
올바른 예배 호칭에 대해
올바른 예배 호칭에 대해 1
1. 한국교회의 예배 호칭 문제있다. 1) 예배드린다 ⇒ 예배한다 2) 예배본다 ⇒ 예배한다 3) 제단쌓는다 ⇒ 예배한다 1) 「예배 드린다」를 「예배 한다」로 한국교회 대다수의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예배호칭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통일된 호칭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교회에서 쓰고
있는 말은 “예배 드린다”
“예배 본다” “제단 쌓는다”,
그리고 적게는 “예배 한다”등의 여러 호칭이
있는데
그 중 “예배 드린다”라는 호칭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예배 신학적으로 보아 올바른 호칭이 아니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요 신적제공(新的提供)이며
하나님의
필요와 그 분의 고안(考案)이다.
계시 없는 이교에서는 인간이 종교심성을
가지고 신을 찾는
행위 과정에서 종교의식이 발생하게 되었으니 그 의식의 주도
자는 인간이 되는 셈이며 인간이 신의 감응(感應)을 얻기위해
무엇을
“드리고” 이 ‘드림“의 치성(致誠)을 다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생명적인 참종교인 기독교의 예배행위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와 임재에 대한 인간의 만남이며 하나님의 요구적 명령에
따른 응답이다. 이러므로 예배에서 ”드리다“라는 말은 예배원리에
합치되지 않는다. 구약의 제사제도에서 그리스도의 예표적(豫表的)인 희생제물을
여호와께 바칠 때 “드리다”라는 행위가 요구되고 있었다.
분명히 하나님과 그 백성사이의 제사의식에서 봉헌적인 매체는
짐승의 희생물이다. 이는 가시적(可視的)이고 모형적(謀型的)이며
형태적요소가 있을 뿐 아니라 구약적예배(舊約的禮拜)의
제의적(祭儀的) 절차상 여호와께 제물을 “드림”에 있어
이것이 그 예배의 주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드림'으로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고”(히10: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one)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2),“...다시는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히10:18)고 하셨다.
따라서 히10:18 이후에는 예배를 위해 “드리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완성되었고 다시는 피흘림이나 희생이
전혀 요구되지 않으므로 “드린다”라는 말은 구약의 제사
제도
(制瀉劑度)에서 요구되었던 말의 잔재(殘滓)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드리다”는 종교의식(宗敎儀式)과 제의적(祭儀的)
관점에서 이교(異敎) (儒, 佛, 禪, 無敎)적인 특성을 담고 있다.
특히 무속종교(巫俗宗敎, Shnmanism)의 수복사상(壽福思想)과
관련이 있다. 즉 “드림”으로 받을 수 있다는 원시 종교의
기복사상과 관련이 있어 신(神)의 감응(感應)을 위해 공적을
쌓으려고 무엇을 바치는 행위의 표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과 10장에 “드리다”라는 것은
구약의 제의법상의 표현을 그리스도의 중보성에서 사상적
인용으로 그것은 희생적 헌신(헬, 영, Sacrifice)의 의미로
보아야 하기에 “드린다”라는 말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예배라는 신학적 의미는“드리고”“받는” 어떤 종교의식물의
수수적(授受的) 의미가 전혀 없는 호칭이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자녀된 신분이 영교적(靈交的) 만남과
교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예배”이다.
올바른 호칭에 대해 2
2) 「예배를 본다」를 「예배 한다」로 한국교회가 예배 호칭에 대하여 반드시 고쳐야 할 말은 “예배
본다”라는 말과 예배 행위를 “제단 쌓는다”라고 표현하는 말이다.
“예배”라는 말의 근본적인 뜻으로도 써서는 안될 말이다.
이 말은 한국교회 선교초기부터 지나오면서 우리의 언어습관 속에
정착된 말이다. 예컨대 술버릇(酒邪)을 “주벽”(酒癖) 또는 “주성
(酒性)
이라 하고 훔치려는 버릇을”도벽(盜癖)이라고 하며, 습관적
으로 쓰는 말버릇을 “구습”(口習) 또는 “어벽”(語癖)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예배라는 말에다가도 “본다”라는 말을 합성(合成)시켜
쓰게 된 것은 언어관습(말버릇)으로 일종의 어벽(語癖)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쳐야 한다. 원래 “본다”(보다)라는 말은 시각으로
사물의 모양을 알거나, 어떤 대상의 내용이나 상태 등을 알려고
살피는 것, 사물의 미적 요소를 즐기며 감상하는 미적지각(美的知覺)
에 쓰는 말이다. 이러한 말을 예배하는 말에 결합하여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예배 본다”라는 말을 교회사적으로 보면 한국교회는 1777년
카톨릭에서부터 1865년 개신교 <토마스>의 선교로 이어져 <알렌>,
<언더우드>,<아펜젤러>, <스크랜 톤>등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의료와
교육, 예배 등이 시행되면서 한국인에게는 “경이로운 일”로 보이게
되었다. 그리고 대원군 시대와 그 직후까지 종교에 대한 박해와 인명이
희생되는 사건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교회 출석이나 신앙을 선뜻 가지려
하지 않고 관망하고 있을 때 먼저 교인(입교)된 신자들의 전도의 방법
으로“주일”혹은 “특별집회”의 “예배하는 것”이 볼만하고 재미가
있고 서양인(선교사)이 왔으니“구경하러 가자”라는 뜻으로 “예배
보러가자"고 한 말이 그 후에 그렇게 전도 받은 사람들이 예배는
“보는 것”으로 알고 "예배 본다"라는 고정어를 만들게 되어
그것이 오늘에까지 관용어가 되었다. 혹자는 요1:46에 <빌립>이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하고 인도할
마음으로 와보라>고 한 말씀이 근거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
지론(持論)을 펴기도 하나, 이는 예배에 적용될 수가 없는 억지에
불과하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신앙인의 영성적 반응이며 인격적
응답행위인 것으로써 "보는 것"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예배 본다”라는 호칭 사용을 계속 방치한다면 예배자는
“예배 참관자”(예배 관람자) 또는 “예배 구경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잘못된 예배 호칭에 대한 성도 교육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이며, 예배 갱신적 차원에서 착오된 신앙용어 순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그릇된 말을 물려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배 본다”는 “예배 한다”로 바로 잡아야 한다.
보는 예배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 서울로뎀교회 정대인목사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보십시오!
한글개역에는 '예배하다'로 나옵니다.
공동번역에는 '예배드리다'로 나옵니다.
=동산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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