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시사포커스 - 월드컵 광풍을 성풍으로

언제 이렇게 우리 국민이 하나 될 수 있었는가. 거리와 가정의 안방에서 폭발하는 함성에는 여야도 없었고 진보와 보수도 없었다. 심지어 세대차와 성차이도 없었다. 모든 이데올로기를 초월했고 문화와 신분,종파와 학연,지연을 초월했다. 심지어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국인 1세와 2세를 하나로 묶었다.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의 가슴에는 오직 우리 대표팀의 승리에 대한 열망만이 출렁이고 있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이 하지 못한 ‘인류의 하나 됨’을 월드컵이 해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혹자는 이런 열기를 월드컵 광기,혹은 광풍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런 월드컵의 역기능에 결코 무지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공 하나에 목숨을 걸고 흥분하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인간 됨의 수준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솟는 것도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월드컵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사회와 인류가 주목해야 할 핵문제,거기에 연관된 세계 평화의 과제,인권의 향방,월드컵 성패에 따라 주가가 폭락하는 어이없는 경제 트렌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패배가 한 국가의 패배나 문화의 패배처럼 수용되고 패배한 팀이 고개를 숙이고 국민의 지탄을 받고 귀국행에 오르는 참담한 모습에서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사이에서 더 이상 가치의 고민을 포기한 현대인들이 스포츠를 거대한 현대의 바알신으로 추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지나친 주최측과 주최국의 상업주의 선동,우리나라 붉은 악마 조정자들의 이익 독식 의혹 등은 이 축제의 동기를 의심하기에 충분함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월드컵의 순기능들을 더욱 눈여겨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월드컵만은 반드시 국력순이 아니다.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 가나도 당당하게 유렵의 부강한 국가들과 맞서서 겨룰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경제적인 스포츠가 축구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가 지적한 것처럼 축구는 공 하나와 두 발, 공을 찰 수 있는 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가장 서민적인 게임인 듯하다. 이 게임으로 풀어내는 전 세계인의 스트레스 해소를 어떻게 경제적인 가치로 다 환산할 수 있겠는가.

(13일 한국- 토고전 끝난후 이영표 선수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동아일보)
최근 우리나라에,아니 이 세상에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는가. 인간은 축제의 존재, 놀이의 존재이다. 현대의 발달된 교육학은 뒤늦게 놀이학습과 놀이치유를 말하고 있다. 한 많은 한민족이 그리고 우리 못지않게 지난한 역사를 살아온 피압박 민족들이 축구로 지난날의 열등감을 씻고 신바람을 회복하고 하나 되어 좀더 깊고 넓게 생각하면, 사소한 관점 차이에 불과한 이념의 갈등을 넘어서서 역사의 내일의 큰 비전을 바라보고 다시 일어서는 힘들을 얻을 수 있다면 월드컵 광풍은 약소민족들의 새 에너지를 창출하는 월드컵 성풍으로 기억될 만하지 않겠는가.
한국인들의 월드컵 거리 응원 풍경,그리고 응원 후의 깨끗한 뒤처리는 대한민국을 열창할 만한 민족적 자긍심을 우리에게 선물하지 않았는가. 이미 독일과 여러 나라들이 한국 응원단의 유쾌한 응원 풍경을 벤치마킹하고 있다잖은가. 거기다가 게임 후에 조용히 그리운드에 무릎 꿇어 기도하는 한국 크리스천 선수들의 독특한 세리머니는 동방의 작은, 신비의 나라가 수용한 복음의 능력을 상상하기에 족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기도 세리머니는 게임 패배 후에도 가능한 의식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존재의 목적은 게임의 승리가 아닌,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이야말로 광풍을 성풍으로 바꿀 때이다. 월드컵 광기의 에너지에 잠재한 삶의 에너지를 극대화하여 이웃들을 끌어안고 거룩한 나라 대한민국, 성서한국, 선교한국 그리고 통일한국의 꿈을 꿀 수 있다면 새 응원문화를 창출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열방을 끌어안고 일어서는 새 나라가 될 것이다. 4년 전 월드컵 4강전에서 우리를 침몰시킨 터키를 축복하고 터키 국기를 한반도 땅에 높이 올린 것을 터키는 물론 세계는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거룩한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거룩한 바람이 다시 불어오게 하자.
이동원 /지구촌 교회 담임목사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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