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로 새벽종 치던 어머니
불신 가정으로 시집와서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된 새댁 전경애는 새벽기도회 시간에 맞춰 일어났습니다. 물동이를 이고 동네 샘으로 물을 길으러 나가는 것입니다. 완고한 시부모 눈에 날까 싶어 예배당에는 갈 수 없었지만 그 시간은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샘으로 가는 길에 예배당이 있고, 예배당 마당에는 커다란 놋쇠 종이 달려있는 종탑이 있었습니다.
새댁은 새벽종 시간에 맞춰 종을 쳤습니다. 종 줄을 잡아당겨 땡그랑 땡그랑 종을 치면서 교회에 못나가는 서러움에 눈물로 가족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종소리는 고요한 바닷가 포구 마을과 먼 바다로 퍼져나갔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그 때를 생각하며 평생 이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합니다.
그녀의 눈물 기도로 남편이 구원을 받았고 자녀들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일본에서 사역하는 황바울 선교사(동경애선교회)의 모친 전경애 집사님이 이렇게 믿음을 지켰답니다. 2남 황바울(황영국)은 선교사로 3남 황영천 목사는 역시 일본에서(동경원천교회)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철저하게 유교적인 집안. 일 년이면 열 차례 넘게 제사를 드리는 우상제단이 있는 집안에 보내진 한 알의 밀알이었습니다. 불신의 가문이 축복의 가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다니기가 쉽지 않았지만 특별한 은혜의 시간입니다. 고요한 시간에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한 날 한 날의 삶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일제시대와 해방. 미 군정시대와 6·25 전란. 그리고 피난생활과 배고팠던 시절을 겪은 한국교회는 눈물과 통곡과 부르짖음의 새벽기도를 통과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새벽교회는 잊을 수 없는 내 평생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간암 말기로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조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남해안의 금일도(완도군)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병세가 위중하게 되어서 광주에 사는 아들 집에서 병원을 다니며 우리 교회에 나왔습니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약간은 호전기미를 보이더니 다시 상태가 악화되어 병색이 짙어지고 통증이 심해지면서 살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통증이라도 덜 하도록 병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내가 병원으로 심방 갔을 때 70 이 다 된 집사님이 심한 통증으로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베개를 가슴에 껴안고 엎드려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뒤척였습니다.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홀로 투병생활을 하는데 더욱 외롭고 힘들어보였습니다. 그 순간 어떤 도움도 못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집사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집사님, 제가 찬송할께요...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주님의 손길을 사모하는 마음에 눈물로 찬송을 드렸습니다. 두 번, 세 번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통증이 멈췄습니다. 집사님은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울더니 베개를 내려놓으며 힘겹게 말합니다. "목사님, 이 찬송... 이 찬송은 제가 새벽기도 다니면서 불렀던 찬송입니다. 구원받은 것 감사해서. 그런데 이렇게 병이 들고, 병과 싸우느라고 찬송도 못 불렀습니다. 목사님! 이 찬송을 불러주시니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에 하늘나라도 옮겨가셨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그 분의 고향 교인이 말했습니다. 고인은 산 고개 넘어 교회를 다녔지만 주일을 빼먹은 일이 없고, 새벽에도 누구보다 일찍 나와 새벽종을 쳤다는 것입니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 섬마을만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는 새벽 종소리에 맞춰 바다로 들로 나갔습니다. 새벽 종지기는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교회로 부르는 성스러운 일을 했던 것입니다. 시험에 빠져 교회를 쉬고 있던 사람도 새벽 종소리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예배당 종을 치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저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이처럼 은혜로운 종소리. 그 때를 살아온 교인들에게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과 함께 생각나는 한국교회의 역사입니다.
- 2006년 12월 15일 황영준 목사 (광주동산교회)
-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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