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로움이 주는 교만 ♧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어렵고 힘든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오늘에 이르는 동안 남에게 얘기하기에 부끄러운 많은 고난과 역경의 지난날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오늘의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서로 다르긴 하지만 태어나서 성장되어 오는 과정에서 환경과 여건에 따라 많은 지배를 받으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눈물 나는 배고픔과 배움의 열정을 멀리하고 생계문제로 남보다 먼저 사회로 뛰어들어야 했던 가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주위 환경!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의 지위와 명예와 재물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남에게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그 비참한 과거가 있었기에 더욱 값진 것이라 생각이 되어 집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우리는 오늘 이 순간에 더욱 겸손해 져야함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그 옛날 어려움을 망각하고 오늘의 내가 있음에만 도취되어 안하무인(眼下無人)인 사람들이 있음을 간혹 보게 됩니다. 배고픔에 빵 한 조각이 아쉬웠던 그 때가 있었음을 무시하고 오늘의 넉넉함에 거드름을 피우는 졸부! 졸병 때 기압(몽둥이) 받던 시절을 잊고 졸병에게 다시 기압을 주는 고참! 말단사원시절 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하 직원에게 설움 주는 상사! 누구에게나 수습과정은 있습니다. 나도 그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눈물 나게 적은 박봉의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이 더 값진 것인데 오늘을 망각하고 나와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그들에게 설움을 주는 것은 주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풍요로움은 교만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겸손을 가르쳐주기 위해 주는 주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풍요로움이 나를 낮아지게 하고 나를 깨트리는 도구로 사용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조금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거들먹거린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풍요로움을 교만으로 표출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혹시 우리는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교만에 차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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