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목사의 주검 앞에서...
그의 부모님이
의성 어느 교회에서 결혼식 하는 날
나는 성악을 전공중인 대학생이어서
기름진 바리톤 음성으로 축가를 불렀고
결혼기념사진을 찍을 땐
터지는 화약조명에 놀라 눈을 감아버렸지.
그가 태어나 첫돌을 맞은 날
주일 낮 예배를 마치고
젊은 찬양대원들과 함께
동인동의 자그마한 단칸방에 초대되어
미역국에 점심을 들며
귀한 맏아들의 첫돌을 축하했었지.
그는 혼자뿐인 아버지에게서
알뜰히 4남 1녀를 얻은 선물 중에
유별나게 착하고 선하게만 자랐기에
청년 때 교회 보컬 팀에서 베이스 기타를 튕기자
아버지의 불만과 걱정이 커질 적마다
나는 오히려 장려할 거라고 귀띔해주었지.
그는 울릉도에서 눈구덩이에서 순교한
할아버지의 유업 따라 다소 늦게나마
복지전공의 길을 벗어나 목회의 길을 택하여
힘든 신학전공 과정과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사회복지를 바탕으로
열정적인 목회를 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지.
그러던 그가
몇 해 전부터 몹쓸 질병으로 투병한다는
어둡고 무거운 소식을 들었을 때
젊고 건강한 목회자여서 곧 완쾌되려니 했지만
오래 전
56세 젊은 나이로 천국에 간 아버지보다
10년이나 앞당겨 46세의 푸르고 싱싱한 나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주검 앞에
장례예식을 집례하시는 노령의 담임목사님은
아버지에 이어 아들의 장례식까지 맡게 됨을
그윽이 애통히 여기며 못내 말씀을 잇지 못했고
안경 쓴 통통한 그를 빼닮은 중학생 두 딸과
홀로 된 그의 부인을 닮은 철부지 아들의 모습에
모두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지.
그의 주검을 앞에 놓고 발인예식을 마치고
코스모스가 하늘대는 신광동산으로 향할 때
문득 영구차 앞에 서있던 젊은 부목사들이 있어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건넸다.
"젊은 부목사님들, 건강조심하세요!"
마침 태풍 탓에
장대비가 올 거라던 날씨가 푸르고 맑기만 하였고
찬양대의 찬송을 들으며 그의 시신이 모교회를 떠나
멀리 사라질 때까지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
그는 대구신광교회 설립 멤버인
故 주성영 장로의 맏아들인 故 주경찬 목사로
구미에 있는 보육시설 삼성원 원장 신영화 권사님의
믿음직스럽던 아들이었다.
잘 익은 열매라서 하늘에서 급히 필요해서인지
비록 46세의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에 갔어도
굵고 짧게 살다간 그가 존경스럽게만 보였고
가늘고 길게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은
오늘따라
한없이 어눌하고 초라하게만 느껴졌었지.
어느 젊은 목사의 주검 앞에서
나는 오늘 통곡하듯 참회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지금도 돋보기안경 너머로 흐르는 눈물이
컴퓨터 자판을 적셔도 부끄럽지 않음은
젊은 그가 나에게
충격적인 가르침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웃 사랑!
이웃 사랑!
이웃 사랑!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은 신권사님과
풀잎처럼 가녀린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이웃사랑의 본이겠다는 결단을 품게 해준
故 주경찬 목사님을 추모하며,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거센 빗줄기라도 쏟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9월 11일 초저녁 무렵에
-대장합150/늘 부족한 큰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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