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교 현장과 현황 작성자 박희중 2006-01-23 조회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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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사람의 순교자  


아래의 글은 7년째 두만강 변에서 상주하면서 탈북자들을 위해 사역하시는 가조 선교사님이 선교 본부로 보내온 글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예랑 선교회(예수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
총무간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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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 공개총살 현장

이름: 리 영희

나이: 37세 여

일시: 2000년 2월10일 12시 정각

장소: 함경북도 무산시 장마당

방법: 장마당의 상점들을 모두 문을 닫게 하고 전 주민이 다 나와서 목격하도록 미리 알림.

처형당하는 이유를 남녀 당원 두 사람이 나와서 연극식으로 해설하고 당과 조국을 배신하면 이렇게 처형당한다고 인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줌.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일어설 수가 없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말뚝에 새끼줄로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를 묶음.
처형당하는 사람의 눈은 헝겊으로 가려졌고  부서진 다리로는  상체를 버틸 수가 없어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음.
사격수들에게 조준을 명하는 장교가
"발사준비!"
할 때, 사형을 기다리던 리영희 성도는
"예수를 믿으시오!" 
"주여!"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는 순간
"발사!" 하는 소리에 더 이상 리영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저격수의 총성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3명의 저격수가 머리에 4발 가슴에 4발 배에 4발을 쏘아서 온몸에 살점이 터지고 심장에서 터진 피는 구경꾼들에게까지 튀었고 땅은 순교자의 피로 검붉게 물들었다. 
시체는 순식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됨(일반사회사범들은 3발씩을 쏨)

위의 글은 복음을 전하다 처형당하는 장면을 같은 동료 전도인이 옆에서 지켜보고 생생하게 전한 보고중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북쪽 땅에는 또 한 사람의 순교자를 내었습니다.

순교한 리영희(이영희)성도는 97년 가을에 굶주림을 견디다 못하여 두만강을 건너 우리 지하처소교회로 들어온 탈북자였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요 성분도 좋은 당원 이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숙청 당해서 남편과 함께 아오지 탄광의 노동자로 전락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들 부부를 받아들일 때에는 남편은 복막염으로 사경을 헤 메일 때였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치료했고 먹이고 입히며 돌보았습니다.
또 위성방송을 통해서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게 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돌 봐주는 인정에 그저 감사할 뿐이더니 차츰 가치관이 바꿔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지금 까지 속아 살아왔습니다." 라고 말한 뒤에는 예수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성장하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습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탈북자 생활에서도 밤새워 성경을 읽고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3개월 정도를 우리와 같이 지낸 그들 부부는 남편의 질병이 우선해지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싸 보내면서 성경책을 함께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음해(98년) 봄에 왔을 때에는 믿음이 많이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리영희는 친정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면서 전도도 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병세는 그 전처럼 다시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또 다시 그들은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본격적인 성경공부와 전도의 방법을 배웠고 주의 일군으로 양육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명감으로 불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여름철에 리영희는 쌀 대신 달러를(북한에서도 미화나 중국 위엔 화는 교환해 쓰는 방법이 있음) 가지고 갔고 의약품과 특수 제작된 소형성경을 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98년부터 99년 말까지 리영희는 수차에 걸쳐 이일을 반복했고 그 남편은 건강관계로 집안을 돌보는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담대했습니다.

그러던 중 금년(2000년) 1월 말경 함경북도 무산에서 체포되어 2주간의 모진 고문 끝에 처형당한 것입니다.
처형당하기 전에 하반신은 고문으로 이미 마비가 되었고 많은 출혈로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고문하는 보위부원들에게
"예수를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이 악질 반동 예수쟁이 죽어봐라"하며 채찍과 몽둥이는 리영희성도의 몸을 파고들었고 그는 신음 대신 "주여!"를 외쳤습니다.

초죽음이 되도록 처참한 고문을 당하고도 우리 선교 캠프나 선교사들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함으로  아직까지 우리는 이 일들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리영희는 장렬한 한 사람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 님들!

지금 북한에서는 도처에 순교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99년 한 해만해도 400여명을 공개처형 했는데 그 중의 3분의 1은 기독교인으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 도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 55년 동안 북한의 죄악을 씻어 내려면 누군가 순교의 피를 흘려야 할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선교사들도 순교의 피를 흘려야할 준비를 해야할 것이라고...
우리는 단순히 배고프고 헐벗은 탈북자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주로 영접케 했고 사명 자로 키웠으며 순교자로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햇빛이 들지 않는 땅굴 속에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며 순교의 때를 기다리는 제2 제3의 리영희가 양육되고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수십 개의 지하교회를 만들었고 계속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북한 선교를 멀리서만 바라볼 때가 아닙니다.
더욱이 일하는 종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봐서는 안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합심하고 합력하고 또 기도하고 후원해야만 할 때입니다.

주님이 가장 관심 하시는 일이 어떤 일이고, 기뻐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우리는 항상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랑의 손길과 기도와 후원으로 이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몰려오는 탈북자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저희는 힘의 한계를 느낍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동참할 일군을 보내주소서!"
"이 일에 후원할 동역 자들을 붙여주소서!"
"기도로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동지들을 만나게 해주소서!"

저희들은 순교를 당하는 날 까지 이 일을 할 것이며, 이 일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기도와 후원을 보내주신 사랑하는 동역자 형제 자매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두만강 변에서 가조선교사로 부터
 

 

 
 
 
사 역 보 고
 

4/4분기 사역보고  

금년에는 얼마나 분주했던지 정신이 없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예랑의 본부는 한해에 두 번씩이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년 초부터 인도, 스리랑카를 가야만했고, 태국, 싱가포르와 수차례 걸쳐
두만강과 중국을 다녀와야만 했습니다. 우리 예랑의 선교사들이 체포되기도 했고 또는 쫓겨 나오기도
했으며 그런 와중에도 지난 7월에는 7기 선교사를 그리고 12월에는 8기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했습니다.

12월말로 접어들면서는 한쪽골방에서 금식이라도 좀 할까했는데 난데없이 해일로 인한 대참사가 나서
한 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참사현장에 수시로 연락을 취하면서 자금이 모아지는 대로 의약품과 구제물품을 보내고 있으며 또 회원
중에 의사, 약사, 한의사들을 동원해서 현지로 파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고는 주께서 우리를 믿고 맡겨주신 일이기에 감사와 기쁨으로 할 수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1만2천의 예랑회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후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본부사역

이미 전해드린 것처럼 대전 유성구 구룡동에 아담한 건물 두체를 기증받아 본부를 옮겼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서 세미나를 했고, 12월에는 입주감사와 8기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렸고 이에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보령에 세웠던 가건물은 보급품 창고와 장기 기도를 하는 회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북한사역

매달 지원하고 있는 쌀은 차질 없이 공급하고 있으며 의약품과 의류도 지속적으로공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할 일은 한끼 식량을 구하러왔던 탈북자들이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전사가 되었고,
날로 성숙해가는 신앙의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간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많은 고초가 있었고 희생도 컸지만 북한의 지하교회는 점차 조직화되어가고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영희 성도가 순교했던 그 곳에는 죽기를 각오하고 72 가정이나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영희 성도에게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순교하는 이영희의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죽기로 결단을 한
결과입니다.
토굴 속에서는 여전히 가조Y 선교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청년들을 키워 북한으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한 여인(가조Y)의 헌신이 이처럼 강한 힘이 되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토굴 속에서 훈련받는 이 청년들은 예수를 전하다 죽는 것을 생애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북한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통일이 되어 북녘 땅에 교회를 세울 때는 여기 토굴에서 가르친 이 청년들이 초석이 될 것입니다.


3.중국사역

후진타오 정권의 선교사 탄압으로 날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 예랑의 선교사들도 사역지를 자주 옮겨야만 할 형편이고,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선교경험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사들이 자리를 옮기게 되는 것은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라하시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부지역에서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있는 김00 선교사는 은밀하게 임무를 수행해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선교사들을 중국 서부지역으로 진출시킬 교두보가 형성된 것입니다.


4.인도 사역

인도의 도미닉, 이영미 선교사가 운영하는 “가루나” 어린이집 수용능력이 한계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고아원 건물을 지어야만 하는데 7만불 이상이 소요되는 일이라 선뜻 시작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일에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도미닉과 이영미 선교사는 더 깊은 인도의 오지에또 다른 현지인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전도했다는 인도, 그러나 기독교인은 참으로 미비합니다.
그곳에 도마가 못 다한 그 일을 이들 이영미와 도미닉은 해내고 있습니다.
또 해일로 인한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예랑본부에서는 긴급자금을 보내 구제활동을 하게 했습니다.
12월말로 들어서는 “가루나 어린이집”의 형제들과 함께 이들 두 선교사는 활발한 구제활동을 하는 것으로
보고받고 있습니다.


5.스리랑카 사역

스리랑카하면 광신적 불교국가입니다.
승려들이 정부의 요직에 앉아 좌지우지 하며 이 세상에서 예수를 가장 핍박하는 나라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 안한준 선교사는 10년 동안 정글을 누비며 교회를 세웠고,
불교도들이 불태워버린 예배당을 다시 수축했으며 통신신학을 세워 수천 명의 신학생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예랑은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 하고 있습니다.

1) 1년 전부터 스리랑카 정글 오지에 병원을 세울 것을 준비하던 중 예랑선교회
뜻있는 회원들의 후원으로 드디어 1월2일 오후4시에  Yerang - Mercy Clinic이라는 이름으로 병원을
개원합니다.
2) 그리고 다음은 마르가야 미고다 교회(Meegoda Church)를 세운 것입니다.135평의 부지에 아담한 건물이
급매로 나와서 이것을 구입해서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배인원은 약100여명 가량 됩니다.
3) 또, 지난 11월1일 콜롬보에서 남방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Mathugama 교회에 불교도들이 난입하여
더글라스 목사(S. Douglas, 15.11.1966생)를 심히 구타하여 중상을 입히고
사모 (말리카 S. Mallika, 17.7.1971생)에게는 머리를 칼로 잘라버리는 등 폭행을 가한 뒤 교회에 불을 놓고,
집기들을 파괴한 후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실의에 빠져 소망을 잃고 있을 때 예랑에서는 긴급자금을 보내어 안한준 선교사로 하여금 다시 재건
하게 했습니다.
이 교회는 다시 힘을 얻어 현재 90명 정도가 출석하고 있으며,별도로 2개의 지교회를 개척하였고
(각 약 20명, 40명), 12개 처소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4) 12월말 현재까지 마가야 교단 27명의 사역자들에게 사역비 전액을 지급했습니다.
5) 통신신학생 1천5백 명에게 차질없이 교재를 발송하고 저들을 특강하여 양육하고 있습니다.
6) 이번 해일로 인한 재난구제에 특별지원금을 보내 저들을 돕도록 했으며,회원 중 의사, 약사, 한의사, 등과
함께 본부요원들을 급파하여 저들을 돕도록 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회원들의 성원이었습니다.
예랑의 회원들에게 주께서 친히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김영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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