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힘 내세요-1
그것은 참으로 이해 못 할 이상한 눌림이었다.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해온 내가 이토록 영혼을 옥죄는
정체모를 기운에 허덕일 줄 몰랐다.
그것은 이른 아침부터 내 안에 시작된 것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짓누르는 것은 아닌가 하여 뒤롤 돌아 볼 정도였다.
“주님, 이 통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에서 해방되게 해주세요.”
나는 무의식처럼 그렇게 차창 밖을 내다 보며 기도했다.
그러나 그 기묘한 통증을 동반한 눌림은 도무지 사라질 기세가 없었다.
토할 듯 견딜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내 안에 쑥쑥 자라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길 가에 이름처럼 드러 누워있는 우면산(牛眠山) 등산로를 따라 뛰어갔다.
거의 본능처럼 나의 발은 인적이 드문 작은 계곡 속을 찾아가고 있었다.
“주님, 도와주세요.
너무나 힘들고...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주님..도와주세요.”
절박함으로 도망치는 사슴처럼 계곡으로 스며들며 그렇게 기도했다.
정말이지 이런 이상한 기운과 아픔은 처음 겪는 것이었다.
체한 것도 아니고 육신이 아픈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견딜 수 없는, 형용못할 영혼의 답답함에 어쩌지 못하는 것이었다.
“주님, 이 이상한 통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깨닫게 하시고.. 해방시켜 주옵소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작은 계곡 속에 숨어 나는 거의 울듯이 그렇게 기도했다.
그때였다.
그 예기치 못한 뜨거운 눈물이 용광로처럼 터져 나온 것이...
도대체 누가 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내 의지로 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서 뜨거운 샘물이 불가항력적으로 한없이 솟구쳐 올랐다.
'도대체 누가 우는 것인가?
분명히 내 의지로 쏟아 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의아함 속에 그저 무방비로 그것을 허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님, 도대체 누가 우는 것입니까?
이것은 제가 우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안에 누가 이렇게 울고 있습니까?”
그 순간 역시 생각조차 못했던 그 말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예비되었던 숙명처럼 바로 그 순간에 터뜨려진 것이다.
“성령님, 용서해주세요.
성령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성령님 이 무지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것 또한 스스로 난처할 정도로 엉뚱한 말이었다.
분명 나는 그런 말을 의도하고 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저절로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이다.
조금 우습지만 나는 어릴 적 예수를 믿은 이후
'하나님 아버지'조차 그다지 찾지 않았던 이상한 종자다.
대부분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를 투사(透寫)해 하늘 아버지를 바라본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무명의 발명가였지만, 격동의 시절들을 통과하며
생(生)을 절망해버린 분이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벽제 화장터에 연기로 보내기 전까지
그 분에 대한 가슴 따스한 추억의 편린은 어느 한켠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내게 하나님 아버지는 웬지 낯설고 먼 느낌이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분에 대해 온전히 배운 적이 없다.
다만 교과서에 적힌 상식처럼 무감(無感)한 정보로서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분의 이름이라는 것..
그보다 뜨거운 부흥회나 은사주의적 열심들 속에 추앙되는
어떤 능력, 기운처럼 그 분을 인식할 뿐이었다.
20대 때, 제자훈련에 집중하며 성경공부와 큐티등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주지주의'(主知主義, 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추구)적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성령'이란 말의 실제를 오해했었다.
무언가 치우쳐 보이고 은사나 기복만을 추구하는
열광주의적 현상으로 느껴진 것이다.
다만 내가 가장 친근해 하고 가까이했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예수님만을 부르고
그의 친구, 제자가 되는 것이 생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내 입에서 생소하기만 하던 성령님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억눌림과 그 통증의 이유를 주님께 물었을 때,
역시 예기치 않았던 뜨거운 눈물이 내 안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눈물의 연원(然原)을 다시 물었을 때,
성령님을 알지 못해 죄송하다는 그 낯선 고백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건 또 무엇입니까? 주님.
왜 갑자기 제가 성령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성령에 대하여 이렇게 불러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은 이런 일들이 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황당함 속에 그렇게 다시 물었다.
그때 전기에 감전 되 듯 내 영혼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겨우 지탱하고 서있던 야트막한 바위에서
일순 몸이 흔들려 넘어질 뻔 할 정도였다.
너무나 강렬한 전율 속에
나는 천둥치는 운명 같은 그 소리를 듣고야 만 것이다.
“우현아..
네가 아직도 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나의 손과 발이 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
호렙산에서나 울려 퍼졌을 것만 같은 강렬한 느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것이 주의 음성임을 알아차렸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늘 그것을 궁금해 했었다.
바로 내가 그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영혼을 뒤 흔드는 강렬한 느낌으로 그 음성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내 영혼을 관통하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진정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며..
매일 삶 가운데서 흩뿌려 온 간구임을 당신이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진정이었다.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주님의 '제자'가 되고
그의 '손과 발'이 되는 그것이었다.
어찌보면 시퍼런 청춘들의 전유물같을 그 고백을
나는 마흔이 넘도록 붙들고 있었다.
정말 그것이 내 기도의 모든 것이었다.
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 기도만 했었다.
내 영혼은 건조했지만 그 심연(心淵)에 웅크린 갈망은 오직 그것이었다.
주님이 만지기를 원하는 지극히 작은 영혼들...
그런 이들을 찾아가서 주님을 대신해 만져드리는 '손'이 되기를 바랬다.
그 깊은 애정과 자비로서 찾아가 함께 거하기 원하시는 풍경들...
그곳에 그 분의 발이 되어 함께 거하기를...
그것이 나의 유일한 기도였던 것이다.
또한 그것이 주님의 제자로서 사는 여정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 갈망을 더욱 깊게한 것은 최근에 벌어진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출처 : http://www.i-hb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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