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 힘 내세요-2 / 김우현 감독 작성자 청지기 2008-05-26 조회 795


성령님 힘 내세요-2

방송에서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누구보다 쉽게 아이템을 잘 찾던 내가 그때는 이상하게 주인공을 찾지못해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나는 주님께서 만지기를 원하는 영혼들을 소개해 달라고 구했고 얼마후 탈북자에 대한 기획을 하게 되었다. 탈북자들을 위해 사역한다는 어느 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중국 연변에서 수십명의 탈북자를 탈출시키는 과정을 촬영할 수 있다는 매우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 때만해도 이런 일을 촬영한다는 것은 무척 여러운 때였다. '이것은 주님이 길을 여신 것이다. 탈북자들의 고통을 알리라고 주신 기회다.' 그렇게 확신한 나는 방송국에서 위험하다고 허락을 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 임의로 잘 아는 교회의 후배 VJ(video journerlist)를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한켠에서는 그런 충격적인 일을 촬영해 방송할 수 있다면 놀라운 반응과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음험한 욕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님의 인도라 믿고 시작한 그 짜릿한 작업의 결과는 그들 모두가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었다는 소식으로 곧바로 나타난 것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이란 이런 것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 당황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내 스스로 저지른 일이었기에 혼자서 풀어야 했다. 정치인, 유력한 목회자들, 선,후배를 통해 이 세포까지 곤고함으로 변질시키는 위기를 풀어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생명의 안전은 고사하고 어디에 잡혀 있는지 조차 알수 없는 곤경속에서 나는 날마다 뼈속까지 타들어 가는 미칠것 같은 통증을 누려야 했다. 다윗처럼 내 영혼에 '음부의 창수(昌水)'가 날마다 스며오는 꿈을 꾸어야 했다. 결국 혈육을 의지한다는 것의 무의미함을 처절히 깨닫고서야 나는 주님 앞에 가련한 몰골로 나아가게 되었다. 영하의 겨울 밤, 도저히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 아파트 뒷산에 올라 주님께 이 위기를 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후배와 선교사, 탈북자들의 신원을 알고 그들을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간구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는데 그때도 전혀 엉뚱한 기도가 터져 나온 것이다. "주님.. 이 악하고 게으른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그 사랑과 은혜를 모르고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내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 악독한 죄인중의 괴수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용서해 주세요." 처음엔 당연히 형식처럼 회개를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시작된 기도는 끝까지 회개로만 점철되었다. 분명 그들을 구해 달라는 간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 의지대로 그렇게 되어지지가 않았다. 어디에 도사리고 있었는지 의식하지도 못했던 무수한 죄들이 토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엔 감각하지도 않았던, 죄라고 여기지도 않았던 것들이 냄새나는 죄악이 되어 탁류처럼 격하게 토설(吐說)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그날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날마다 그 산에 올라 기도를 열면 그 회개가 터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 엄청난..악하고 추한 죄인이라니..' 짐짓 놀란 것은 나 자신이었다. 그동안 나는 나름의 신앙과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교회 뿐 아니라 심지어 방송국 안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영상의 주제는 오직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였다. 서러움을 안다고 서른 이라는 나이에 영상을 미션으로 받은 후에, 나는 주님께 영화를 가르쳐 달라고 구했었다. 참으로 엉뚱한 의탁이지만 늦깍이가 영상을 배울 곳도 마땅히 없었고 그런 기도는 어릴적 부터 내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난 어린시절부터 주님을 친구라 여기고 내밀한 고백들을 스스럼없이 고하곤 했었다. 기도를 하다가 지치면 주님을 위해 최신 유행가들을 불러 드림으로서 '위문공연'을 하기도 한 웃기는 제자였던 것이다. 영화를 가르쳐 달라는 내 기도에 주님의 응답은 뜻밖에도 말씀이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25:40 기도 다음 날, 성경을 읽던 중에 이 말씀이 내 영혼을 관통했다. 나는 그것이 응답임을 직감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 세상에 버려진 가장 남루한 영혼들의 풍경을 주님의 것처럼 담아 낼 수 있다면...그것이 천국의 영상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깨달은 나는 곧바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그 풍경들 속에 거하기를 구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남들이 돌아 보지 않는 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방송을 하면서도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지향하는 나의 추구를 사람들은 ‘진실함‘이라고 평가했었다. 어쩌면 내 스스로도 그런 평가를 용인하고 즐겼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회개의 영이 터지자 죄라고 내 안에 위선의 허물이 벗겨져 나왔다. 겹겹이 가려진 내 영혼의 덮게가 역한 내음으로 허물어지는 충격.. 그 회개의 영이 날마다 내 안에서 치솟아 나온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 마4:17 나는 그 때, 이 말씀의 의미를 얼핏 깨달았다. 그들을 구해 달라는 간구보다 회개만 토했을 뿐인데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어디에 갇혀 있는지와 신원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뜻밖의 위기와 회개의 시간들을 거치면서 나의 영혼은 오랫만에 투명하여졌다. 그리고 더욱 어릴적 그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 고였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신 후, 나는 잿빛 하늘로 올라가는 화장터에 그 검은 연기... 그 죽음의 이미지에 한동안 힘들어 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지.. 죽고 난 후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어린 시절 가질 법한 그 막연한 두려움에 불을 끄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가 동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우현아, 교회에 가보니 예쁜 여학생들이 참 많더라.” 그것이 누나의 전도였다. 여학생을 보러간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나는 누나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성남의 후미진 작은 교회에서 주님은 저 깊고 깊은 산속 오막살이 같이 보잘 것 없는 꼬마를 두팔로 가득 안아 주셨다.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 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 났네 주 내 안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이 찬송가를 듣는 순간, 내 영혼은 아릿한 감격과 의문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예수님은 내가 알기도 전에.. 2천년전에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을까?' 그 이해되지 않는 사랑을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고 나서 나는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그 때 죽으신 것이다. 이제 나는 죽으면...그 사랑의 주님이 계시는 천국에 간다." 이 복음이 어리고 소외된 꼬마에게도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었는지.. 비록 어렸지만, 그것을 깨닫고서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겼을 뿐 아니라 예수의 사랑이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예쁜 여학생을 한번도 사귀어 본 적은 없지만 내사랑 예수님을 사귄 것이다. 교회에서 처음 들었던 그 찬송가는 후에 내 생의 주제곡이 되었다. 주 내 안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내 안에 늘 계시는 참 좋은 나의 친구.. 나는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이 예수를 미치도록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분을 위하여 사는 제자가 되기를 중학교 시절부터 헌신하여 평생의 꿈으로 키워 온 것이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어 무수한 상을 타던 나는 막연하지만 주님의 풍경을 그리는 천국의 화가가 되기를 늘 등,하교길에 간구했었다. 그리고 70년대 후반 열풍처럼 불어 오던 제자훈련에 눈을 뜨고 땅끝까지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해 온 것이다. "우현아..진정 네가 아직도 내 제자가 되기를 원하느냐? 진정으로 나의 손과 발이 되어 사는 그 갈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느냐?" 그렇게 예기치 않은 눈물과 성령님에 대한 무지를 고백하고 나서, 나는 불같은 그 음성을 들어야 했다. 그 겨울 밤, 회개의 기도가 터지고 영혼이 비워 진 후 나는 더욱 더 어릴 적 그 첫사랑을 회복화고자 하는 열망을 느꼈다. 사실, 주님의 제자로서 살기를 남들보다 더욱 '특심(特心)'으로 추구했지만 20대의 시절은 그야말로 음부의 구덩이를 관통하는 절망이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시절을 길게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나는 그 시절을 거치며, 그리고 서른에 다시 회복되어 다큐멘터리를 하면서 비록 풋내가 나지만 어릴적 그 애절한 사랑을 상실하고 말았다. 특히 방송을 하면서 나는 더욱 건조해져 갔다. 삶은 안정되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영역에서 평가를 받으며 일했지만, 그리고 남다른 진실한 풍경을 추구한다고 자부했지만 내 영혼은 충일하지 못했다. 겨우 주님의 손과 발이 되고자 하는 명분만 꾸역꾸역 내놓을 뿐이었다. 그러나 건조했어도 그것은 진실이었다. 마흔이 넘어,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미치는 그 시절에 여전히 '제자'가 되기를 꿈꾼다는 것은 촌스러울수가 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과 평가와 극한 중노동의 치열한 방송의 생리는 내 영혼을 답답하게 하였다.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거의 울듯이 나를 여기서 해방시켜 달라고 막연히 중얼 거린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탈북자와 얽힌 그 사건을 거치며 내 안에는 방송을 그만 두고서라도 다시 주님을 위하여 무언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갈망이 깊어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사건으로 인한 회개의 과정에서 나는 어릴적 그 첫사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그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정한... "어릴적 부터 나의 갈망은 오직 당신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주님을 좋아하고 그리워 했으며 그 손과 발이 되기를 소망했는지 당신이 아십니다." 나는 주님의 물음에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 그것은 역시 부인못할 진실이었다. 다시 주께서 내 영혼에 이런 강렬한 울림으로 임하셨다. “진정 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너의 그 열심과 애씀만으로는 안된다. 그러나 너의 능력과 감각과 열심만으로는 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없다. 너는 나의 제자들이 그러했듯 오직 성령으로 변화되어 오순절의 역사를 경험해야 된다. 그것을 위해 내가 네게 보내어준 보혜사 성령님을 너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그 무지를 너의 영혼이 그렇게 아파하며 우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이건 내가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주님이 내게 보내주신 그 성령님을 알지 못하는 그것으로 내 영혼이 아파하다니... 그것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인 것이다. “나를 향한 너의 열심과 특심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과 나타나심.. 그 인도하심을 깨닫지 못하면 결국 너는 너 자신의 자아가 주인이 되어 ..... 스스로 세운 정과 욕심으로 육신의 열매만 거두게 될 것이다. 너는 이제 진정으로 성령님을 만나야 하고..그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네가 소망하는 진정한 나의 제자가 될 수 있단다.” 그렇게 주님은 이 예기치 않은 영혼의 통증과 눈물과 고백들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다. 성령님 힘내세요..우현이가 있자나요.. 뒤늦게 성령님을 만나고 제자로 살기를 꿈꾸는 그 여정..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의 깨달음들을 고요히 나누어 본다. 출처 : http://www.i-hb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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