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
♡ 그는... ♡
그는
전라도 땅 어느 조그마한 곳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던 선생님,
교직에 있었을 적엔 음악 하는 이들과 어우러져
늘 연주활동을 했었던...
그는
퇴임 후 작은 도시,
우상이 들끓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장로찬양단을 만들어 단장이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먼 곳 대구에선
미친 듯 열심히 하라며 적극적인 후원에 나섰고,
악보~ 테이프~ 단보 뭉치 등~ 격려와 성원이
끝없이 보내졌고...
그는
대구의 모습을 그대로 닮으려했다.
작달막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로
마치 훈련대장처럼 우렁찬 구령을 외치며
시간이 흐를수록 대구를 빼닮으려 했고,
조직의 운영과
단장과 임원들이 헌신하는 자세까지...
그래서
대구보다 더 열정을 지닌 단장이 되어
이른 새벽,
결석단원이 많을 땐 안타까운 마음에
여러 단원들 앞에서
뜨거운 눈물로 열성 있기를 호소하기도...
그는
분명 대구 단장보다 더더욱 극성스런 단장이 되었다.
마치 불도저처럼,
아니 독일군 탱크처럼 거침없이 밀어붙여,
두 번의 정기연주회와 여러 번의 순회찬양~
그리고
지난 5월 15일 서울 올림픽 홀에서의 전국연주회 때엔
모두가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하고 멋진 연주로
우리 앞에 성큼 커진 모습으로 다가왔고...
\"어때요 대구형님들~,
이만하면 쓸만할 것 같소~
아직도 부족하면 한 번 더 오셔서 때려 주셔잉~
이제부터
아주 그냥, 더 세게 밀어붙일꺼여~
그려 조탕게~\"
그는
뜨거운 열정과 부지런함으로
한 주에 두 번씩 새벽 찬양모임을 가지며
인구 30여 만의 작은 땅에서 100명 단원을 목표로...
결국
극성스런 그의 초청을 받아
난생 처음 낯선 전라도 땅을 찾게 되었고,
연거푸 세 번이나 방문하게 되면서
나는 그의 별명을,
\'전라도 판 더 못 말려 단장\'이라 불렀고...
그는
전국 연주회를 앞두고 한 주간 계속된 새벽연습과,
일흔 세살 나이에도
실버합창단 까지 지휘를 맡아 맹활약하시던 어느 날,
그만 자리에서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원광대학교 병원에서 협심증 증세로 대수술을 거쳐
인공 심장 박동기를 달게 되었고...
그는
지금 원광대병원 중환자실(203호)에 누워서도
단원들의 출석상황을 염려하며 기도한다니,
이보다 더한
열정적인 찬양하는 순례자가
이 땅 위에 과연 몇 이나 있을까?
마치
나를 대신해
그 같은 고통당하는 처지에 있음 같아,
괜히
애초부터 대구를 닮으려 노력한 것이
잘 못된 결과로 나타난 것에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는지...
그는
익산장로찬양단의 단장이신
고준환 장로님이시다.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그와 약속한 것처럼
퇴원해서 다시 새벽 찬양 모임에 나타나는 날,
나는 잰걸음으로 익산으로 달려가
그를 뜨겁게 안으리라.
감사와 감격의 눈물 흘리며
익산의 찬양동지들과
소리 높여 함께 찬양하리라.
찬양하는 순례자를...
6월의 첫 주말
저물어가는 조용한 시각에,
두 손 모아 하늘 우러러
고준환 동지의 쾌유를 눈물로 기원하며...
-♡ 대장합150/늘 찬양하는 큰 머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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