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 탈북소년 \"한국 복음가수 되고 싶어요\"
“北간부·가족들도 중국으로 불법 월경… 중국개밥이 간부 식사보다 낫다”
[쿠키뉴스 2006-11-07 14:28]
[쿠키 지구촌=호주]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주민의 탈북 러시가 우려되면서 중국내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으로 재조명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의 당간부 가족들도 중국으로 불법 월경을 하고 있으며 북측의 마약 밀수출도 부쩍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는 6일 메리 앤 토이 특파원의 기사에서 탈북자 및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중국내 탈북자 실태를 전하고 최근 중국의 감시와 단속이 강화돼 탈북자들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뇌물 등 탈출비용이 크게 치솟았다고 밝혔다.
신문은 지난달 발표된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탈북자 보고서를 인용, 개인과 기독교 단체 및 비정부기구들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충분한 돈과 연고자가 있는 사람들을 며칠내로 남한까지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취약한 \"지하철도\"를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약 2만명의 탈북자를 도왔다는 길림성 연변의 한 기독교인 그룹은 도움을 준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송환으로 북한에 돌아갔으며 남한으로 갈 수 있었던 사람은 50명 정도밖에 안된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헤럴드지는 남한행 티켓을 살 형편이 안돼 중국에서 당국의 감시를 피해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살고 있는 탈북자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북한에서 부모를 모두 여의고 이판사판으로 탈북한 20세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탈북자들의 곤경을 전했다.

\"북한이 좋아져도 절대 안 돌아갑니다\"
8년전 5살난 아들과 9살된 딸을 데리고 두만강을 넘어 월경한 박하수(가명) 씨는 먼저 떠났던 아내가 자취를 감추자 더이상 아내를 찾지 않고 있다.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한 농가 작은 방에서 아들과 함께 인터뷰에 응한 박씨는 자신이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트랙터를 몰았으며 추수가 끝나면 식량 배급을 받았지만 생존에 필요한 양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이야 초근목피를 먹어도 괜찮지만 아이들은 이런 음식으로 키울 수가 없었다\"면서 상황이 나아지면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는 물음에 \"북한에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박 씨는 두 자녀가 따로 당국에 잡혀 송환되는 바람에 아이들을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두 번이나 두만강을 건너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뇌물을 주고 아이들을 빼돌렸지만 그후로는 더욱 조심하느라 자녀들은 학교에 다니는 것도 그만두었다.
박씨는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은 벌써 굶거나 병들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세 탈북소년 \"한국 복음가수 되고 싶어요\"
현재 17살이 된 딸은 다른 성으로 가서 한 조선족 가정을 위해 일하고 있다. 박씨는 아들을 교육시키고 싶어하지만 더 현실적으로는 아들이 운전과 같은 기술을 배우기를 바라고 있다.
잘 웃고 호기심이 많아 근엄한 아버지와 대조를 이루는 아들은 교회단체들이 은신처를 제공해 왔는데 한국에서 복음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지난 1월에 도착한 명철(20) 씨는 북한의 기근이 한창이었던 14세 때 아버지와 함께 처음 중국에 왔으며 그때 도움을 주었던 가정이 다시 그를 받아들였다.
12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2년 후 아버지와 함께 먹을 것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와 10일간 머물다가 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명철은 어린이였기 때문에 당국이 관대하게 대했으나 아버지는 18개월 동안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나중에 풀려났지만 건강을 되찾을 수 없었고 명철은 아버지 일로 인해 보다 나은 삶이 보장되는 군입대가 금지됐다.
17세 때 광산으로 가서 일했다. 10년만 일하면 먹을 것을 충분히 얻고 당원이 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갔으나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중국 개밥이 북한 당간부 식사보다 낫다\"
소년들은 광산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하생활을 했으며 당선전 교육을 받기 위해 주 1회만 지상 출입이 허용됐다. 3년후 그는 감독관을 설득하여 모친 성묘을 위한 휴가를 받았다. 귀향해 보니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앉아서 죽느니 중국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일단 돈을 좀 벌면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귀국을 꺼리고 있다. 그는 잠자는 데 문제가 있다. 개가 짖기만 해도 중국 공안이 아닐까, 이웃이 500위엔(약 6만원)의 보상금 때문에 신고하지나 않을까 신경이 예민해진다.
그는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중국의 개밥이 북한에서 당간부들이 먹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 한달에 300위엔을 번다. 북한에서는 1년에 2500원 정도밖에 받지 못했다.
지난 10년간 연변에서 북한인 2만명을 도운 기독교인 김 씨는 그들이 도와준 탈북자들의 대부분이 함경북도 출신의 농부와 노동자들이지만 최근에는 평양의 엘리트 집단인 당간부들의 가족들도 불법으로 월경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경 경비병이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더 쉬워지면서 그 비용도 훨씬 비싸지고 있다. 김씨는 또한 마약 특히 필로폰의 밀수가 크게 늘어났다면서 마약의 대부분이 중국 관리들의 도움으로 산둥성 항구도시 칭다오와 그 아래 남쪽의 광둥성까지 운반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이 도와준 탈북자의 대부분이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일부는 몇 개월이나 1년여 동안 머물다가 자발적으로 돌아갔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강제 송환돼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약 50명만이 남한으로 갈 수 있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호주온라인뉴스 (A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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