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우선의 기독교! 현대의 바리새 주의! ♥
(이 글은 이남식 장로님의 교회분규에 관한 슬픈 소식을 읽고 답하려다 전송실패로 우리 DEC 홈피에 올려 보았습니다. 부족한 점도 이해를...)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나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
115개의 계명들! 어휴. 그래서 바리새와 사두개가 율법권위자로 판을 치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군임 하던 율법시대. 예나 지금이나 성직을 오용하여 지나치게 군임하고 겸손을 잃어 버리면 하나님은 개혁을 원합니다. 종교개혁의 시대적 외침이며 하나님의 요청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현대의 가톨릭도 많이 변화 • 개혁되었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은 확 줄였습니다. 오직 두 계명, 그것도 하나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형제를 사랑할지니라.”(1요4: 20-21)
사랑, 하나님 사랑=인간사랑, 동시적이고 하나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강도만난 자, 사랑을 더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우선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은 못 본체 지나갔지만 괄시받던 사마리아인은 끝까지 대상의 죽어가는 자를 책임지고 살렸습니다.
현대의 기독교가 사랑을 상실하고 현대판 바리새 주의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선한 자가 없느니라.” “선한 선생님이여!” 라는 호칭에 예수님의 겸손한 시정을 요구하는 대답이었습니다. 자기도 하나님 앞에 몸을 낮춘 겸손이었습니다. 절대 진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다고 했습니다(Kant).
교회가 사랑을 상실하고 성경을 빙자한 자기주장으로 분열되고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이너스 성장, -14만 4천명(작년 10월 인구통계), 꼭 생명책에 기록된 숫자입니다.
성경의 해석의 차이대로 교회가 분열한다면 수백만 개신교회로 핵분열이 일어 날 겁니다. 많은 평신도들은 하나의 교회를 원합니다.
죽기 전에 통일 안 되나? 평신도와 장로합창단의 형제는 자주 이런 말을 해 봅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어떤 경우에는 거의 일방적 one side 선언이었다고 회고해 봅니다. 개인감정까지 폭발하고, 겸손이 부족, 사랑의 조언을 할 기회가 꽉 막혔고, 교회문화, 권위적 문화가 이를 삼가하고 포기하게 합니다.
목사님들! 수고와 희생과 어려움이 크겠지요.
목사직은 선택된 “좁은 문!” 십자가의 길. 세상의 열락은 뒤로, 좀 멀리 해야 할 “좁은 문, 생명의 길”(마7: 13-14-)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교회는 만인 사제(루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엄한 존재로서의 인간 평등의 기회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제단 설교의 기회도 더 열려야 합니다.
교회도 사랑의 담론, 부드럽고 온유한 토론의 기회가 더 열려야 합니다.
당회, 공동의회, 제직회가 사랑의 민주적 회의제로 더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남식 장로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외롭다 생각마시고 선한 싸움, 사랑의 승리를 확신하시고
화평을 위해 전진 하십시요.
-♥ 지암 홍양표 장로(T1/대구중부교회) ♥-
yphong4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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