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신학대학생과 동문 선배의 글 작성자 순례자 2009-02-16 조회 735

감리교 신학대학생과 동문 선배의 글

-인천장로성가단 홈페이지에서 펌-

 


1. 감리교 신학대학생의 글


감리교신학의 문제


저는 이번에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하는 신학생입니다. 저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역사적 예수, 성서비평, 과학과 영성, 종교다원주의, 신화연구 등등.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말하는 성경내용과 교수님들이 가르쳐주시는 성서내용,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너무나 틀렸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의문을 던졌습니다. 때로는 교수님과 논쟁하기도하고, 때로는 학생들과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역사적 예수, 성서비평, 과학과 영성, 종교다원주의, 신화와 관련된 수업을 통해서 저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신적인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의 아들 되신 그 분이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새롭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로 탄생하셨건 죽었다 삼 일만에 부활하셨건 그것은 저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그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 오셔서 신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에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닮았습니까?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 육신의 부활과 같은 교리와 신조들만을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주의 종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윤리적, 도덕적 과실로부터 면죄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 지금의 감리교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팽배해 있지 않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권력을 그렇게 탐하셨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고급 아파트와 승용차를 타고 다시셨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회칠한 성전을 사수해야한다고 하셨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세습을 원하셨습니까?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 자리에 자신이 오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하나님께 맡겨야 된다고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이야기하지요. 과연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부패한 종교와 정치세력에 대항할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천지가 창조될 필요도 없습니다.


입만 열면 복음, 신비주의, 영성을 떠들지만 결국은 교회의 외형적 성장과 성도들을 장악하기 위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사기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목사들의 작태가 아닙니까? 오늘날 한국교회(장로, 고신 예외 아닙니다. 그나마 감리교의 전통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실들이 불거져 나올 뿐입니다. 똥 뭍은 개, 겨 뭍은 개, 욕하지 마시고 잘 성찰해보세요)는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의 회당과 한 치의 차이도 없습니다. 교권주의, 정치세력과 결탁, 교리와 신조를 통한 가학적인 정죄와 배타주의 등등......,


저는 정말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좋은 전통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자신의 신학적 양심을 팔아먹은 교수님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예수님처럼 세상의 예언자로서 삶을 살아가라는 학풍은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라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감리교회 목회자들은 감리교신학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죠. 그리고 신학생들에게 신학적으로 성찰하고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신학생들에게 있어서 이론적인 성찰과 자기 신앙에 대한 점검은 사라졌고, 그들은 오로지 목회적 기술 쌓기에 급급합니다. 그리고 교단의 썩은 줄을 잡기 위해서 우왕좌왕합니다. 이론과 실천은 따로 놉니다. 역사적 예수를 통해서 예수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썩어빠진 교권에 대항했던,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낮아진 삶을 사셨던 예수의 삶은 방기(放棄)된지 오랩니다.


이러한 현상은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전통을 상실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이단으로 정죄 당하기까지 고수하고자 했던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신학생들과 목사들은 하나님과 시대에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 고뇌하기 보다는 대형교회와 무지몽매한 성도들이 부여하는 정당성을 얻고자 자신의 신학적 양심을 팔아먹었습니다. 아니 예수 이름으로 사기 친 것이 성도들 앞에서 들통날까봐 절대로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신학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말 한국 감리교회의 개혁을 원한다면 더 이상 대형교회 목사들은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교는 학생들에게 대형교회의 목사가 되라고 말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조리한 사회에 비판을 가하고 그 사회를 정화시키는 데 앞장 설수 있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질 수 있는 예언자가 되라고 요구해야합니다.


남들은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이단의 학교라고 비난하지만 전 오히려 신학적, 신앙적 진실성과 용기를 바탕으로 강의하시는 교수님들이 있는 감리교신학대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감리교의 개혁은 분명 감리교신학의 정체성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부탁합니다. 제발 컨닝 하지 말고, 결석, 지각하지 말고, 수업시간에 인터넷 검색하지 말고, 열심히 신학적으로 고민하길 바랍니다. 또한 제발 복음주의와 영성의 탈을 쓴 교수님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들의 물주는 지금 감리교단에 똥칠을 하고 있는 대형교회 목사들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감리교의 오늘과 같은 치욕은 우리들의 게으름과 유약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무식한 것은 죄악입니다. 감신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온전히 자신을 맡기십시오.


2. 감리교 신학대학 1회 동문의 글


작금의 우리 감리교단에서 되어지는 것 들은 우리뿐 아니라 각 교단마다 갈등과 분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한국 사회가 개신교 신뢰지수를 18% 밖에 인정을 안 하는 것 입니다. 누구의 책임일까요? 한마디로 지도자들입니다. 각 교단마다 명예욕과 탐심이 가득한 꾼들이, 자기 처신은 모르는 수준 이하의 무리들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입니다. 이미 된 사람은 분쟁소지가 있으면 양보하던지 안합니다.

그런데 무자격자들은 금권 인력 다 동원하여 마치 정치꾼들 하듯이 남을 짓밟고 누르며 유언비어 중상모략까지 하면서 동역자들 간에 편 가르기를 하고 미끼를 던지며 운동을 하지요. 그동안 한국교회에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들의 말로는 모두 언젠가 역사바로잡기에서 다 들통이 꼭 나게 됩니다. 절대 비밀은 없으니까요 “너희 귀 속으로 한 말까지 다들어 난다‘ 고했습니다.


지금 한국감리교회는 감독이 우상입니다 웨슬리는 본래 영국성공회에서 감독-Bishop 제도를 벗어나서 순수한 신앙운동이 그분의 사명이고 조직교회 제도를 중요시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영국은 아직도 감독제가 아니고 의장 연회장 제도입니다. 필자가 미국서 30년 목회하면서 UMC 회원 목사 되기 위해 미국감리교 역사와 교리장정을 배우는데 200년 전 에스베리가 감독 제도를 구상할 때 웨슬리는 염려했다는 것 입니다. 그것은 카톨릭이나 성공회처럼 제도적인 교회가 될까봐 그런건데 아니나 다를까 지금 UMC는 개교회는 망해도 감독실만 있으면 된다는 식입니다.

해마다 300여 교회가 문을 닫고 있지요. 필자가 있었던 뉴욕 연회가 30년 전 600여교회가 있었는데 80년초에 연회 본부를 팔고 지금은 뉴욕연회가 400여교회로 줄었답니다. 과연 교회는 조직화된 제도로 감독이란 특권층을 세우는 것은 200년 전엔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오늘의 평등주의와 평신도 중심 목회시대에는 전근대적 시대착오적인 방법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마치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꿔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래 감독은 성경 대로 보면 초대교회 당시는 교회 사역자는 집사와 장로뿐인데 집사는 개교회서 섬기는 일이라면 장로는 섬기는 자 와 가르치는 이로 분류되고 감독은 그중에서 몇 교회를 보살피고 보호하는 일이지 지금처럼 지배적인 위치에서 행정적인 일만 하는 것은 근대 서구사회 행정체제와 같은 관료적인 수반은 성경적이 아닌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로 주안에서 교회는 같은 형제자매의 관계지 가톨릭 처럼 계급화 된 직분은 아닌 것이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다. 지도자연 하지 말라 하시었다. 오직 섬기는 종의 일 뿐인 것으로 보는게 정상이다 “인자는 섬기려 왔다” 고 했다.


더구나 지금 시끄럽게 하는 한국식 감독제도는 아무 것도 근거가 없이 돌출된 기형아 같은 제도이다. -우선 지구촌 어느 곳에도 2년제 감독은 없다, 또 감독은 전임으로 교회담임을 안한다. 그리고 교역자를 파송하고 파송된 목회자 생활을 책임지는 일인데 한국 감독은 안한다. 그리고 임기가 끝나고 목회를 계속하는데 어째서 종신 감독이 되는지 미국서는 감독이 다른 보직으로만 가도 감독명칭은 안 부른다. 왜 현재 감독이 아니니까!


또 감독이 되면 왜 자색 박사 까운을 입는지 감독은 분명 계급이 아니다. 또 성례행위는 박사 까운을 입는게 아니다. 계급적인 카톨릭의 교황이나 추기경 주교들이 박사 까운 입고 성례집행이나 예배인도 설교하는 것 보았는가? 필자가 있었든 뉴욕연회 와이트 감독님은 한번도 박사 까운 입고 안수식 하거나 성례 집행한 것 못 봤고, 항상 검정 아니면 흰 까운이었지  자색 까운이나 자색 로만칼러 한 것을 못 봤다. 감독은 모든 교역자를 관리하기에 매사에 신중하게 본이 되어야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감독은 자기가 관리하는 연회(Conference)가있어야 한다. 그런데 감독회장은 담임 연회가 없으니 이는 행정관이지 성직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왜 이런 제도를 만드는지 그러면서 예산은 4년 감독하고나면 시골교회 목회자 평생 한 것보다 많은 부를 축적 할 수 있다니 과연 교회는 망해도 감독만 사는 제도가 아닌가 생각해볼 문제이다 .


끝으로 작금에 되어지는 일은 사회법이나 교회법으로만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진정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성경대로 풀면 얼마든지 풀 것 아닌가. 우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땅을 나눌 때 “네가 동하면 나는 서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한다” 고 양보한다.


이번 일도 신앙의 마음으로 누군가 교단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양보하면 그가 진정한 감독감이 될 거요. 허나 지금 150만 감리교 성도는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가! 감독이 뭐 길래 감독 독감을 앓고 있다. 또한 교회에서 민주주의 다수의 원칙을 자꾸 말들 하는 데 진정한 교회는 민주주의는 아니다. 무엇이든지 신앙 양심으로 가야한다.

모세가 시내산 에서 십계명 만들 때 광야 군중들은 절대다수로 자기네들이 자기들 신을 자기들 손으로 만들자고 하여 금을 모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으나 결과적으로 망하지 않았든가! 약속의 땅 가나안복지로 가기 위해 여리고성을 함락 할 때 12명 중 여호수아 갈랩 2명만 믿음으로 전진해서 들어간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해서 빌라도는 겁이 나서 내준 것 아닌가! 과연 불의한 다수의 횡포를 지난 수세기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다수는 숫자 일뿐 그것이 진리는 될 수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후배 재학동문 들 어느 누구든 어느 쪽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따라 되는 것이 정도라 할 것이요.


              09년 2월 12일 감신대학 제1회 동문; 권유순 목사 (가정과교회, 컨설턴트)


3. 한국교회여,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 글은 2월 12일 용산참사와 관련한 '한국교회에 드리는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철수 목사(분당두레교회)의 발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을 기억한다. 예언서는 구약성경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방대한 분량인데도 한국교회는 예언자들에 별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십일조를 강조하기 위해 말라기로 달려갈 뿐이며, 예수님의 예언의 확증을 위해 이사야서로 달려갈 뿐이다.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사회정의를 외쳤고 당시 종교와 사회적 부정·부패에 항거했다.

부정한 왕권에 항의했던 예언자들을 한국교회는 아는가 모르는가.

종교선호도 조사를 보면 불교·천주교·개신교 순이다. 한국교회가 더 많이 전도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 나라 백성들이 한국교회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체제 순응적 한국교회로서는 이 땅을 개혁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가, 모르는가. 왜 한국교회는 용산 참사에 대해서 말이 없는가.

약하고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지 아니한가. 도대체 한국교회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성경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약한 자들 편에 서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강한 자, 기득권자들에게만 관심을 갖고 있는가. 예수님은 가난한자, 없는 자, 슬픔을 가진 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 기득권자들과 권력자들, 성공한자들의 편에 서고 있다.

예수님을 본받으라는 말씀에 한국교회는 귀를 열지 않고 눈을 열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국교회는 왜 이렇게 되었는가.

오직 성장주의와 기복주의에 찌들려 미신화 되고 신비화되는 집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온갖 성장주의와 기복주의가 난무하며 수적으로 성장한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인가.

인간의 상식만도 못하는 교회가 아닌가. 어찌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힘없는 자들은 안중에도 없는가. 예수님은 당시 기득권자들과 전혀 화합할 수 없는 분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가. 물신을 향한 도덕적 집단 투항이 일어나는 때에 이 세상을 향하여 복된 공격을 감행해야 할 교회는 지금 어디 서 있는가.

과연 한국교회는 기득권자들 편인가 하나님 편인가.

도덕적으로 황폐화된 현실 속에서 인구의 20%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는데 과연 한국교회는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 땅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있는가. 쓸데없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지 아니한가.

용산 참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다.

생명을 경시하고 인권을 버리고 있지 아니한가.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러나 이 사건은 오늘날 현재의 모습이며 한국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보이지 않는 기득권자들과 재벌들, 개인주의적인 기독교인들과 정권이 합작하여 만들어낸 사건이다. 어찌 사건의 본질을 이다지도 모른단 말인가.

온갖 개인주의자들이 판치고 돈 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는 한국교회여!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 줄 아는가.

문둥병에 걸린 것같이 감각을 상실한 한국교회여!

이 땅에 박제된 예수님을, 회칠한 무덤에서 예수님을 불러내야 한국교회가 산다.

한국교회여 들으라. 하나님 심판의 음성이 들리지 아니하는가.

한국교회여, 말씀으로 돌아가자.

한국교회여,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

박철수 / 분당두레교회 목사



 

작성자 비밀번호
※ 간단한 코멘트 남기세요▼
장로합창단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첨부 조회수
1  여생을 알려 주는 시계 (1) 청지기 2009-02-16 748
2  이런 교회도 있습니다 - 은현교회의 신선하고 아름다운 세대 (4) amenpark 2009-02-14 688
3  ♠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 (4) 순례자 2009-02-13 767
4  * 일반병실로 옮긴 김상고 장로님 소식 * (1) amenpark 2009-02-12 747
5  ♣ 이런 교회도 있다는데.../한강중앙교회 ♣ (4) 순례자 2009-02-10 804
6  세상에서 가장귀한 꼴등 (0) 청지기 2009-02-07 759
7  한국최초 코러스영화 - 유 앤 유 (0) 노래 나그네 2009-02-06 774
8  싸우는 교회 (6) 진근만 2009-02-04 783
9  해석의 차이 (1) 진근만 2009-02-03 690
10  믿음 소망 사랑의 노래친구들에게... (0) 순례자 2009-02-03 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