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날 이라도 될 것 같던...
그리도 쉼 없이 퍼붓던 기나긴 폭염과 장마속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온몸이 땀으로
숨이 막히던 밤과 낮이 없던 더위...그리고 계속된 비...
그도 모자라 연속 온나라을 날려버린 태풍, 태풍, 태풍, 또 태풍...
마치 가을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소리없이 모양없이 길가에 차례없이 어우러진 풀잎들 위에
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가로등 빛에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가로수의 매미소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상큼하게 높아진 쪽빛하늘 의 떠도는 새하얀 구름따라
어느사히 이렇게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길가에 줄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따라 소리도 없이
빨강 하얀 코스모스 에 업펴 우리에게 고운 추파를 던지며
한 걸음씩 그렇게 찾아 왔습니다.
오늘도 신문에는 금년의 벼농사는 유래없는 흉년이라 하는데
그런사히 사회는 권력자들의 권력 쟁취싸움
예산의 현실은 생각치도 않고 선심속 공약속에 온통 현혹 입놀음...
서민들에게 아무 부담없이 공약대로만 된다면 온 나라가... 하지만...
온통 너도 나도 오르기만하는 물가에 밀리고 불경기에 힘드는데
공직자들은 소속사의 적자속에서도 자신들의 배불리기에 힘쓰고
지금도 눈먼 돈의 날개짖은 그 누구들을 향하여 날아가고...?
그런사히 서민들의 주머니속과 지갑속은 눈에뛰게 점점 비어가고
그런데도 서민들의 생활비는 쉼없이 널뛰기 오르고...또 뛰고
그래 뛰자...뛰자...이왕 뛸바에 왕창 뛰자...또 뛰자
저 푸프고 높은 가을의 하늘만치...ㅉㅉㅉ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갈아라...※
추석...! 모든것이 풍요속 풍요가 넘처나는 한가위 추석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것이 풍요치 못하여도
이렇게 임진년의 민족 대명절 한가위 추석이
풍요의 희망속에 이렇게 우리들 앞에 가까이...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갈아라...※
님들 그래도 마음은 옛추억의 그풍요로운 한가위를 그리며...
푸르른 넓은 들판은 어느사히 누우런 들판으로 변하고
어느사히 풍요을 바라는 황금빛 으로 변하는 들판
매년 찾오는 한가위 추석 올해도 변함없이우리들곁에...
변함없이 찾아오는 풍요로운 희망속에 한가위 추석
님들 마음은 넓은 황금빛 뜰 고향으로 치달아 가고있겠죠...?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갈아라...※
그래요 사회의 어두운 면이 풍요로움 보다 넘쳐도
우리님들 우리들에게는 희망이란 것이 있습니다
고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향하시는 님들 건강조심
안전 또 안전 운전하시고 귀향, 귀경 하소서...
그러나 저처럼 고향을 찾을수없는 실향민은.....애고~~~흑,흑
서울을 떠나지않은님들...그리고 서울에서 기다리는 님들
그래도 기쁘고 즐거움속에 한가위을 맞으소서...
금년 추석에는 환한 대보름달을 볼수있다고 하네요
나의님들 휘엉청 둥근달 처럼
모두 모두 풍성하고 여유로운 한가위를...()()()
그런데 어찌하여 풍요의 명절에 풍요로움이
자꾸 자꾸 우리들 주위에서 멀어져만 갈까....?
※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갈아라...※
2012, 임진년 9, 28, 풍요로운 한가위을 앞두고
아현골에서 하얀구름
※ 그 옛날 秋夕寫眞(추석사진)과 風景(풍경)※
※...그때을 아싶니까...? ...※
"명절이데 싼 것이라도 사 입혀야죠" 추석 시장에 나온 어머니. (동대문시장. 1962년9월10일)
귀성객으로 붐비는 서울역.(1967년 9월16일)
초만원을 이룬 귀성열차. (1968년 10월5일)
콩나물 시루 같은 객차에나마 미처 타지 못한 귀성객들은
기관차에 매달려서라도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거의 필사적이다.
기적이 울리는 가운데 기관차에 매달린 두아낙네의 몸부림이 안타깝다. (1969년 9월24일)
정원87명의 3등객차 안에 2백30여명씩이나 들어 찬
객차 안은 이젠 더 앉지도 서지도 못해 짐 얹는 선반이
인기있는 침대(?)로 변하기도.(1969년 9월24일)
추석을 이틀 앞둔 24일 서울역은 추석 귀성객들로
붐벼 8만1천여명이 서울역을 거쳐 나갔다. (1969년 9월24일)
8만 귀성객이 몰린 서울역엔 철도 직원외에도 사고를 막기위해
4백80여명의 기동경찰관까지 동원, 귀성객들을 정리하느라 대막대기를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데모 진압 장면을 방불케했다.(1969년 9월24일)
추석 보름달 (1969년 9월26일)
귀성객이 버스 창문으로 오르는등 고속버스정류장 대혼잡
(광주고속버스정류장. 1970년 9월14일)
삼륜차까지 동원되어 1인당 1백원에 성묘객을 나르고 있다. 홍제동. (1970년 9월15일)
60~70년대에 선보였던 대표적인 추석 인기 선물 - 설탕세트.
잔뜩 찌푸렸던 추석날씨가 오후부터 차차 개자 고궁에는
알록달록한 명절옷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찼다. (경복궁. 1976년 9월11일)
꿈속에 달려간 고향.
지하도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새우잠을 자는 귀성객들. (서울역앞에서. 1978년 9월16일 새벽2시)
추석 전날 시골 풍경 (1980년 9월)
한복정장차림으로 추석제례를 올리고 있는 4대째의 일가족.
올해 1백살난 姜敬燮할머니가 시부모의 묘에 절을 할때 80세된 며느리
呂判敎할머니와 손자 손부 증손자 증손부와 문중일가 20여명이 지켜보고 있다.
(慶北 金陵군. 1980년 9월24일)
추석 귀성객 (1980년)
추석 귀성객은 돌아오기도 고달프다.
통금이 넘어 14일 새벽 0시20분에 도착한 연무대발 서울행
고속버스 승객들이 야간통행증을 발급받고 있다. (1981년 9월14일)
광주행 고속버스표를 예매한 여의도광장에는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표가 동나버렸다. (1982년 9월19일 정오)
짐인지 사람인지... 귀성버스도 북새통. 연휴 마지막날인 3일 한꺼번에 몰린 귀성객들로
짐짝처럼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관광버스 짐싣는 곳에 승객이 앉아 있다.(1982년 10월3일)
고향으로 달리는 마음 추석귀성을 위한 고속버스 승차권
예매행렬이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도 끝이없이 늘어서 있다. (여의도광장. 1983년 9월10일)
빗속의 귀성예매 대열 추석 귀성객을 위한
고속버스승차권 예매가 15일 서울여의도에서 시작되자
3분의1일인 1만5천6백여장이 팔렸다. (1985년 9월15일)
추석 고향길은 멀고도 불편한 고생길.
서울역 광장은 요즘 귀성객들이 하루 10여만명이나 몰려들어
민족대이동의 인파로 붐비고 있다. (1985년 9월29일)
이번 추석 귀성길에는 고속도로 국도마다 차량홍수를 이루면서 중앙선 침범,
끼어 들기등 무질서한 운행으로 극심한 교통체증과 혼란을 빚었다.
(벽제국도.1987년 10월7일)
추석 고향길은 멀고도 불편한 고생길. 서울역 광장은 요즘 귀성객들이 하루 10여만명이나
몰려들어 민족대이동의 인파로 붐비고 있다. (1985년 9월29일)
추석 귀성열차표를 사기위해 서울 용산역광장에 몰려든 예매객들. (1989년 8월27일)
가다가 쉬다가... 추석인 14일오전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에는 귀성객과 성묘객들의 차량이 몰려 평소보다 2~3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1989년 9월14일)
멀고 먼 귀성길 5일부터 추석귀성 열차표 예매가 시작되자
6일 발매되는 호남선 열차표를 사려는 시민들이
앞자리를 뺏기지 않기위해 텐트와 돗자리까지 동원,
새우잠을 자며 날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역. 1992년8월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