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하는 사람' ♡
『한마을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멍청하고 어리벙벙한 세 친구가 있었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실시한 신입사원 공채시험에 원서를 내고 같은 날 함께 시험장에 들어가 나란히 앉았다.

첫 시간에 상식문제를 푸는 답안지를 받았는데, 맨 끝 문제가 ‘생각하는 사람의 작가이름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는커녕,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깜깜한 터였지만,
요행히 맨 뒷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옆 사람의 답안지에서 커닝을 해 ‘로댕’이란 정답을 쓰고 가벼운 맘으로 벌떡 일어나 나가려 하는데….
남았던 두 친구가 당황하듯 귀엣말로 긴급구원요청을 애타게 날렸다고,
“친구야! 작가이름이 뭐꼬?” 친구들의 애타는 구원요청에 주섬주섬 마스크를 고쳐 쓰는 척하면서 정답을 가르쳐주었다. “로댕! 로댕!”
옳구나! 신이 난 두 친구가 웃음 띤 얼굴로 답안지에 정답을 썼다. 한 친구는 곧장 “오댕!”을, 남아있던 다른 한 친구는 엄청 유식한 척하려고 “댄뿌라!”(일본어/てんぷら-튀김요리)를 썼다고….』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François Auguste René Rodin/1840〜1917)은,
근대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면서 세계적인 조각가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로댕은 그리 총명하지 못해서 유명했던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의 입학시험에 응시했지만 세 번이나 거듭 낙방했다.

가난했던 집안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석조장식(石彫裝飾)일에 뛰어들어 일하다 누이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충격을 받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로댕의 재능을 인정한 신부의 설득으로 다시 작업장에 돌아오기도 했다.
석조장식에 종사하며 나뭇잎, 포도송이 등 건축에 쓰이는 장식품을 만들면서 예술작품보다는 먹고살기 위해서 날마다 열심히 석공 일에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댕의 재능을 눈여겨본 한 친구가 진심어린 충고를 던졌다.
“여보게, 눈에 뵈는 나뭇잎만 만들지 말고 내면의 것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로댕은 그때까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을 들은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단다. 지금껏 먹고살기 위해서 보이는 것에만 몰두해왔음을 깨닫고, 이때부터 로댕은 진정한 예술가의 안목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해
그의 나이 40세에 마침내 불후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을 내놓게 되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가끔 보고 듣는 얘기지만, 아무리 ‘그러려니’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터무니없는 짓거리를 해대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내면의 생각이나 가치판단도 없이 이웃에 대한 배려도 무시한 채,
마치 ‘뇌(腦)가 없는 사람’처럼 어설프게 행동하는 이들이 흔하기에 늘 실망스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우리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문화‧경제‧교육‧종교계에 이르기까지 파벌과 이권 다툼으로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 따위를 깡그리 외면한 채 자신의 이속만 채우려 들이대면서,
선한 이웃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그러진 무리들의 작태(作態)’를 지켜보노라면, 가끔은 참을 수 없도록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던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의 명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쉽던 어렵던 무슨 일이든 먼저 생각과 고민을 거쳐 신중히 벌려야 하거늘….
오랜 날 코로나의 고통에 허우적이는 선한 이웃들의 삶 속에 실망의 엇박자를 쳐대는 무리가 흔하기에,

‘사랑의 달 5월’이자 ‘창단 39주년’을 맞아
생각이 얕고 얼빵한 꼰대장로인 나부터라도 먼저 이웃사랑 전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픈 맘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글로 옮겼다.
♥ DEC150/늘 찬양하는 큰 머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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