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는 끝났다, 심형래에게 박수를 쳐라~ <디 워>

사실 난 심형래를 감독이 아닌 코미디언으로 좋아했었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코흘리개 시절 우리들의 최고의 친구는 심형래 아저씨였다. 그러나 그는 아저씨라기 보단 펭귄, 칙칙이, 파리, 무엇도보다도 영구였었다. 오랫동안 그는 <우뢰매>의 에스퍼맨이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로인해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런데, 그런 그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언제부턴가 '모여라 꿈동산' 수준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티라노의 발톱>, <꼬마공룡 쭈쭈>, <드래곤투카>, <용가리>에 이르기까지 그 영화를 본다는 자체가 쪽팔리다고 여겨질 그런 영화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웠다. 난 그 때 "저 사람 왜 저러지, 챙피해죽겠다~"하고 생각했다. 더구나 칸영화제에서 <용가리>가 40억에 팔렸단 말에 너무너무 챙피했다. 그거 산놈은 얼마나 허탈해하며 한국영화계를 모두 싸잡아 도매가로 욕했겠는가 하면서 말이다.
불과 얼마전까지였다. 그 얼마전이 내겐 얼마전인데 그 때로부터 6년이 지난거였다. 난 심형래라는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지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우뢰매>의김청기 감독이랑 가깝게 지내더니 어설프게 감독 흉내를 내다가 당연히 실패한 코미디언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와 여러 사람들에겐 불과 얼마전이던, 그러나 꽤 긴 시간인 6년간 그는 이 영화 <디워>를 자기 말마따나 공부해가며 찍고 있었던 거였다. 다들 무시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을 묵묵히 츄잉하면서 속으론 두고봐라 두고봐라 내가 니들을 엿맥이리라 라고 각오를 다지면서 그는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게다.
처음 예고편을 봤던 수 개월전 솔직히 난 긴가민가 했다. 그 때 보여진 영상만으론 이게 잘 나온 화면인지 아닌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난 속으로 사기꾼 심형래가 또 되도 않는 구라를 치고있는 거 아닌가 했다. 그런데 그 후로 새롭게 나오는 예고편들을 보면서 어라? 이게 아닌데 싶었다.
뭔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때깔이 과거 영화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화면의 때깔은 헐리우드 때깔이었다. <용가리>와는 아예 다르며 하물며 여타 국산영화와도 확실히 구분되는 그 고급스러운 때깔말이다. 난 치사하게도 뭔가 기뻤다. 그렇게 심형래를 욕했으면서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봐 확 달아오르는 냄비마냥 심형래의 새 영화를 이미 기대하고 있는 날 발견한 것이다.
어제 오래도록 기다려서 개봉 첫 날, 좀처럼 안 하는 인터넷 예매까지 해 가며 극성스럽게 확인한 <디워>는 정말 울컥하게 하는 영화였다. 난 영화보는 내내 감탄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어디가서 배웠을까, 누구에게 배운걸까, 가격대비 성능 지대 최고인 그 화면과 사운드 앞에서 난 너무너무너무~ 행복했다. <제5원소>가 개봉되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이 나처럼 기뻤을까? <반지의 제왕>의 개봉 때 뉴질랜드 사람들이 나처럼 기뻤을까?
내 닉네임은 헐리우드다. 한국영화는 죽었다 깨나도 헐리우드 영화가 될 수 없다. 난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시스템의 거대함, 과학적이고 체계적임,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제작비에 대해 부러움과 시샘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 싸움 자체가 안된다. 그런데 어제 <디워>를 보면서 난 슬쩍 뭔가 희망 하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맞짱은 뜰 수 있을지 모른다 하는. 맞짱을 뜨더라도 최홍만에게 내가 주먹 한 번 못 뻗고 한 방에 사망하는 그런게 아니라 주먹을 주거니 받거니 발차기에 십단콤보까지 마구 써가면서 가뿐 숨을 몰아쉬는 볼만한 싸움이 될 날이 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워>의 이무기의 자연스럽고 빠른 움직임과 사운드는 최근 본 괴수 영화중 단연 최고였다. 도시를 때려부수는 것에 있어서도 흠 잡을 것이 적었다. 비록 조선시대 장면이나 이무기를 추종하는 했지만 이 정도만해도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컴퓨터그래픽이 많이 쓰이는 영화에서의 관건은 얼마나 가짜 티가 안나냐 아닌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이 영화의 화면은 모 기자의 말마따나 흠잡는 사람이 쪼잔하게 느껴질 만큼 실감나게 잘 만들어진 것이다. 게다가 언젠가 그가 토크쇼에서 말한 "내게 2억달러를 주면 타이타닉 4대를 빠뜨리겠다"라던 말과 같이 가격대비 성능을 생각해야 한다. 타 블록버스터와 비교를 하려면 제작비가 3분의 1 수준인 것을 감안해서 비교를 해야한다. 무엇보다도 더구나 그는 <용가리>의 감독이라는 걸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똥통학교 전교 꼴지가 서울대 합격하는데 6년 걸렸다면 박수쳐줘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난 칭찬도 왕 칭찬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는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나 이제 코미디는 끝난거 같았다. 실은 베토벤의 유언이라는 "코미디는 끝났다, 박수를 쳐라" 라는 말은 뭔가 인생에 대한 거대한 성찰이 담긴 묘하게 슬픈 말이었지만 난 이 말을 <디워>에대한 평에 인용하고 싶다.
<디워>는 중간중간 가끔 웃긴다. 그리고 그 몇 번의 웃김은 아주 웃기다. 그러나 난 심형래가 더 이상 자기 스스로는 안 웃겼으면 좋겠다. 그의 코미디 인생은 끝났기를 바란다. 웃기려거든 영화로 웃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편 즈음 <디워> 보다 훨씬 잘 만든 SF판타지블록버스터를 더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워>가 한국은 물론 헐리우드에서도 꼭 성공해야만 한다.
난 이제 심형래 팬 되련다. 그는 이미 자기 싸움의 상대를 헐리우드라는 괴물로 설정한 듯 하다. 그래서 신난다. 헐리우드와의 맞짱이라니...그래서 난 결심했다. 그가 사각의 링 위에서 헐리우드와의 맞짱에 가쁜 숨을 몰아쉴 때 난 관중석에서 그를 응원할 거라고. 그리고 승패에 상관없이 박수를 쳐야지. 지금 순간 심형래가 한국인인게 자랑스럽다. 이런 하이 퀄리티 오락영화를 끝내 만들어줘서 그에게 고맙다. 그가 아니었다면 한국형 블록버스터(뭔지 알거다)같은거 말고 한국산 블록버스터를 보는 일은 아예 어려웠을테니까 말이다. 기분이 좋다, 아주 아주...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될 것이다.
-어느 홈피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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