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작성자 정은진/T2 2007-11-30 조회 2035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옥성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과연 성경적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교회 개혁은 시작되며,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부터 교회 부패는 시작된다(p.9).
기독교를 이성적 탐구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기독교도 문제이지만 머리를 포기한 기독교는 훨씬 더 위험합니다(p.92).

상품을 광고할 때 광고의 형태는 자주 바꿀 수 있어도 그 속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는 바꾸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p.33).
세상을 향하는 마케팅 교회의 방향은 올바르지만 마케팅 교회가 들고 나아가는 내용은 잘못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간 것까지는 좋은데 교회의 본질을 놓고 나아갔습니다(p.61).
교회가 세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또 받아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교회가 바로 마케팅 교회입니다(p.89).
각자의 색깔(개신교와 가톨릭)을 포기하더라도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라면 무엇이라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p.97).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프래그머티즘이 유발하는 가장 큰 위험은 수많은 가짜 크리스천의 양산입니다. 가짜 크리스천, 다른 말로 하면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은 프래그머티즘을 통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프래그머티즘에 빠진 교회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해 고민합니다(p.99). …
오늘날 교회에서 간증 집회가 많이 열리는 것은 프래그머티즘적인 사고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증 집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p.101).

오늘날 성경 말씀을 떠난 간증들이 판을 치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의 교회들이 프래그머티즘에 물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p.103).

왜 오늘날 마케팅이 이렇게 교회 속에서 이처럼 득세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케팅이 약속하는 즉각적 효과의 유혹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지하기보다 즉각적인 결과와 반응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 왜 우리는 마케팅의 즉각성을 의지합니까?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p.15).

마케팅 교회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복음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p.60).
교회는 마케팅의 유혹을 말씀에 비추어 분별하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적 상황’이라는 말로 정당화하기에 더 바빴습니다(p.166).
부흥이냐 위기이냐를 결정짓는 시금석은 교회가 지금 말씀 속에 있는가 아니면 말씀 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의 여부입니다(p.384).

마케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실종시킵니다.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겠다는 애초의 좋은 의도는 마케팅의 본질 앞에서 힘없이 무너집니다. 마케팅은 본질상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거부감을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제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사라지는 순간 기독교의 교리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p.435).

마케팅 교회 속에서 복음이 상품으로 인식되는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복음의 가치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나를 편하게 하기 위해 있듯이 말입니다(p.406).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는 우리 형상의 본질인 하나님을 볼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비로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교회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바로 선포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p.452).

교회에서 말씀의 권위가 사라질 때 말씀의 능력도 함께 사라집니다. 말씀이 교회 속에서 사라질 때 가장 중요한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인간은 영적 굶주림에 시달리게 됩니다(p.456).

(성경을 제 멋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비꼬며...)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성경 본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이 내게 어떤 효과를 주는가가 중요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나에게 확실한 ‘필(feel)'을 꽂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설교에서도 굳이 성경 본문을 가지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과 관련 없는 얘기로 채운 설교를 더 이상 누가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가 감동과 재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일 뿐이지요.
(이와 같은 설교를 하는 목사의 경우를 예로 들며...) “그래, 내가 성경 본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설교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감동만 엄청나게 받더라. 사람들이 감동받고 돌아갔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냐? 너 아까 내 설교에 우는 그 사람들 못 봤냐? 사람들이 듣고 눈물까지 흘리는 설교보다 더 훌륭한 설교가 어디있냐? 너 그런 얘기하는 거 보니까 은혜를 좀 더 받아야 되겠다. 내 설교 테이프 가져가서 다섯 번만 반복해서 듣고 다시 와라.”(p.109)

우리 주위에는 바른 복음이 아닌 잘못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 교회로부터 우리는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생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찾아 그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p.112).

채워줄 수도 없으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겠다는 헛된 약속을 하는 마케팅 교회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빠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마케팅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결국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마케팅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마케팅 교회에서 당장의 필요를 채우면 채울수록 점점 커지기만 하는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p.455). (☞ p.251의 예화 참조)

이 글을 읽은 분 중에 저와 같이 오늘날 마케팅 교회에 대항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시는 분이 있다면 무엇보다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항상 어느 시대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지키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대마다 비록 소수이기는 했지만 진리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교회가 바른 성경의 진리대로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행동했던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사의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됩니다.
워필드는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 진리는 믿는다고 고백할 가치도 없는 진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워필드의 말처럼 우리가 진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진리가 그만큼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믿고, 진리대로 살며, 진리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수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진리는 다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있습니다(p.457).

- 대장합150/늘 찬양하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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