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역 역사 지하도,
저녁이 밤으로 넘어가는, 가슴이 따듯해지는
시각에 소주에 아딸딸하게 취한 노숙자들이 군데군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인자한 얼굴에 흰머리가 덤성덩성하게 난 80대 대장 노숙자가
빙 둘러앉은 대원중 새파랗게 젊은 20대 젊은이에게 묻는다.
대 장: 자네는 어쩌다 노숙자가 되었는가????
20대: (머쓱한 표정으로) 마누라에게 반찬 투정을 하다가 쫓겨났습니다.
옆에 있던 30대가 호사스럽다는 듯 눈을 흘기더니 한마디 툭 던진다.
30대: 나는 밥이 질다고 투정하다가 쫓겨났는데 자네는 나보다
더 심했군!
이 말은 들은 40대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를 거든다.
40대: 그 정도면 자네들은 행복했던 거여. 나는 묻는 말에 늦게
대답했다고 쫓겨났어.
그러자 듣고 있던 50대가 한숨을 폭~ 쉬며 하소연한다.
50대: 내는 마누라가 마실갔다가 오길래 '어디 다녀 오는거야?' 하고
그것도 두 손으로 맞잡이 해 공손하게 이바구까지 하면서
물어봤다고. 그랬더니 집안 분위기 망친다고 쫓겨 났는기라.
하고 말하자 옆에 있던 60대 노숙자가 혀를 끌 끌차며 눈을 스르르 감고
말한다.
60대: 허허. 어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나? 자네도 보기 보다는
용감한데 가 있구먼, 나는 소파에 같이 앉아 TV를 보았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네. 소파 아래에 앉지 않고, 같이 앉으면 동급으로
취급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60대가 눈물을 찔끔거리자, 70대 노숙자가 한마디 거든다.
70대: 휴~옛날의 내 청춘이 그립구만. 나는 할망구하고 눈 마주쳤다고
쫓겨났다네.
휴~~하고 넋두리 하자 잠자코 듣고 있던 90대 노숙자 왈
90대: 그래도. 자네들, 아직은 행복한 게야. 나는 할망구가 빨리 죽지
않는다고 나가서 죽으라고 쫓아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