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펼 벅'의 한국사랑 ♡
『장편소설 ‘대지’로
1938년 여성 최초 노벨 문학상을 받은
대문호이자 인권운동가 ‘펄 벅’
(Pearl Buck/
1892. 6. 26∼1973. 3. 6/향년 81세)여사는,
어릴 적부터 선교사인 부모와 함께 40년간 중국에서 살았지만,
훗날 ‘남은 삶(餘生)을
오로지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던
숱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1931년에 발표한 대표작
‘대지(The Great Earth)’에 이어
6. 25전쟁 후 빈곤했던 1960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후에
특히 전쟁고아(혼혈아)를 돕는 사회사업에 힘쓰면서
1962년에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
‘살아 있는 갈대(The Living Reed)’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하여 예찬(禮讚)했습니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라며,
거액을 아낌없이 바쳐가면서 사회사업을 했던 것입니다.
유서에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 썼기에,
부천시 소사구 옛 ‘소사희망원’ 자리에
숭고한 업적을 기리려고 2006년 ‘펄 벅 기념관’이 세워졌고,
매년 6월에 펄 벅 탄생기념
‘그림 그리기와 학술대회’가 열리기에,
큰 머슴도 몇 해 전에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펄 벅 여사가
이처럼 ‘한국에 대한 사랑’이 깊게 된 것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겪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1960년 11월에
대구-경주-부산으로 이어진 여행 중,
황혼 녘에 경주 들판에서 하루 일을 마친 농부가
볏단을 실은 소달구지를 끌면서도
지게에 볏단을 지고 걸어가고 있어
통역을 통해 농부에게 물었답니다
.
“왜 무거운 볏단을 힘들게 지고 갑니까?
소달구지에 타고 가면 편할 것을?”
그러자 농부의 대답은,
“에이! 어떻게 타고 갑니까?
소는 나보다 온종일 일을 더 해서 힘들어하는데
짐을 나눠서 져야지요.”

이같이
소의 피곤함을 배려한 농부의 갸륵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진 펄 벅은,
‘밀레의 만종(晩鐘)’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며
감동한 나머지 미국으로 돌아가서
곧바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볏단 지고 가는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고
온 인류가 되찾아야 할 원초적 마음이다.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힘들게 짐 지고 걷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 채찍질하고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이와 같은 우리 농촌풍경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다음날 펄 벅이 시골 마을을 지나면서
집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가장 높은 가지마다
따지 않은 채 잘 익는 감이 달린 것을 보고
동행한 통역자에게 물었습니다.
“저 높은 가지마다 달린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남겨 둔 건가요?”
“아닙니다. 그건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겨울 새들이 우리 마을에 오면 먹으라고 남겨 둔 거지요.”
펄 벅은 동행했던 통역자의 말에 너무도 감동하면서
그제야 탄성을 지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 바로 이 ‘까치밥’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6월과 함께 온 나라가
대선 열풍에 휩쓸려 소란할 즈음에
‘펄 벅의 한국사랑’의 일화가 떠오른 것은,
‘소리 나는 꽹과리(고전 13:1)’처럼
말로만 ‘한국사랑’을 외치는
숱한 정치꾼들에게 받은 ‘깊은 실망감을
진정한 한국 사랑으로 위로받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 DEC150 / 늘 찬양하는 큰 머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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