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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현 장로. 지난 7월 퇴임한 그는 역대 헌재 재판관중 가장 많은 소수의견을 냈다. ⓒ 심자득 |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헌법재판소 재판관에서 퇴임한 지 한 달을 맞은 조대현(60) 장로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는 갈라디아서 말씀으로 대신 답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지난 5월, 조 장로는 아내와 함께 퇴임 전 휴가를 내고 2박3일 일정으로 강원도 태백의 영성훈련원 예수원을 찾았다.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앞으로 뭐하고 살까요’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서였다.
“첫날 갈라디아서 말씀을 주셨어요. 그때부터 ‘하나님, 이제는 내 생각도 없고, 내 의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가져가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의 계획을 굳이 말하라면 이거라고 할 수 있겠죠. 내 뜻이 아닌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조 장로를 최근 서울 일원동의 개포감리교회(안성옥 목사)에서 만났다. 이 교회는 헌법재판관으로 있던 지난 6년간 조 장로가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자문’을 구했던 곳이다. 1987년부터 출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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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을 내고보니 9명의 헌재 재판관중 소수가 되기 일쑤였으나 그는 새벽마다 기도로서 하나님께 답을 구했다. 그 과정은 외로움이었고 고독이었다. |
조 장로에게 하나님은 누구인가. “주변 여건이나 환경을 언제나 뛰어넘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했다. 51년 충남 부여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어렵사리 마칠 수 있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꿈도 꾸지 못했다. ‘아버지와 함께 일평생 농사를 짓자’는 게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생님을 통해 아버지를 학교로 불러내시고 저를 꼭 중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하셨어요. 저의 상황을 뛰어넘어서는 방향으로 저를 인도하신 겁니다. 그 결과 중학교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아들이 공부를 잘하자, 아예 아버지 어머니는 짐을 싸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공장에 다니고, 어머니는 행상을 하며 그를 뒷바라지했다. 부모가 고생하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그는 당시 학비가 면제였던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려 했다.
“이번엔 학교(용산고)에서 ‘너는 서울대를 가서 우리 학교를 빛내라’며 법대에 들어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한 기업체에 장학생으로 저를 추천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게 됐어요. 이때도 하나님은 저의 환경을 뛰어넘게 하셨죠.”
2005년 헌법재판관이 된 것도 뜻하지 않은 인도하심이었다.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였던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재판에 대리인으로 나섰다가 기각을 이끌어냈다. 이듬해 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관 후보가 됐지만, 노 대통령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야당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찬성 146표, 반대 103표. ‘간신히’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다.
처음엔 무척 힘들었다. 다른 재판관들과 의견이 달라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과연 재판관 자질이 있는가’ ‘가치관이 잘못된 것인가’ 너무 힘들어 그만둘 생각까지도 했다. 매일 새벽예배에 나가 ‘나는 왜 남들과 생각이 다르냐’고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생겼다.
“그럼 내가 너에게 재판관을 시킨 게 잘못이란 말이냐” 하나님의 음성은 단호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이 말씀을 보면서 그제야 하나님께서 재판관의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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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가 너에게 재판관을 시킨 게 잘못이란 말이냐” 다른 재판관과 다른 의견을 자주 내다 보니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에 의심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렇게 다그치셨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시대를 앞선것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성적을 순위로 매길 때 종합성적순으로 하지 말고 과목별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당시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행되고 있다. 그 외에도... ⓒ 심자득 |
그는 역사상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낸 재판관이 됐다. 6년간 358건에 이른다. 아쉬움도 남는다고 했다. 미디어법을 날치기 처리한 것에 대해 무효 선언을 못한 것,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회복시키지 못한 것, 자식까지 낳고 살았는데 위장결혼했다고 남편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중국교포 여성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 사건 등이다.
조 장로는 “하나님은 법률이나 국가권력 행사가 부당한 것을 지적하라고 나를 헌재로 보내신 것 같다”며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한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계획을 물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내 능력 이상으로 나를 쓰셨는데, 환갑이 지났다고 해서 그냥 두실 것 같지는 않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시지 않으면 변호사로서 봉사하는 길을 찾아봐야죠.” 순간 부와 명예를 뒤로 한 채 ‘이웃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우미’가 되어 동분서주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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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고 무엇이 국가에 유익일까를 구하며 살아온 6년의 헌재 재판관을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구하고 있다. "하나님, 이제는 내 생각도 없고, 내 의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가져가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세요" ⓒ 심자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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