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파키스탄 진다바드(Zeandabad·만세), 코리아 진다바드.”
파키스탄 바시안에 있는 아르미 이재민 텐트촌에선 매일 새벽, 이런 구호가 울려 퍼진다.
씩씩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밥퍼 목사’로 알려졌던 김범곤 목사와 한국인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수백 명의 파키스탄 이재민들이다.
작년 10월 지진 참사로 인해 8만여 명이 목숨을 잃고,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 동이 터오르자, 500여 개의 텐트를 걷어 젖히고 어린이들이 맨발로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손에는 쟁반과 주전자가 들려져 있다.
김 목사가 운영하는 긴급구호 급식소에서 아침식사를 받기 위해서다. 아침 6시30분.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100여 명이 줄을 서 기다린다. 준비된 식사는 로띠(호밀로 만든 부침개)와 짜야(홍차를 우유에 데운 것). 3500여 명을 먹이기 위해 김 목사는 30여 명과 함께 새벽 4시부터 음식을 만든다. 손으로 로띠를 만들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가스시설과 전기를 끌어와 자동으로 만들 수 있는 기계를 3대 들여놓았다.
‘파키스탄 밥퍼’는 제대로 말도 안 통하는데, 아침을 짓느라 열심인 파키스탄 인부들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닌다. “고향에서 부모형제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납니다.”
텐트촌을 돌면, 만나는 사람마다 “코리아 슈크리아(Shukrea)”를 연발한다. ‘대한민국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김 목사는 지진 발생 직후 난생 처음 여권을 만들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 조사단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다. “굶주리는 이재민들을 보고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예 눌러앉아 버렸지요.”
서울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월동준비를 하다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다쳤던 김 목사. 그는 불편한 몸으로도 밤을 새워가며 밥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땐 파키스탄 정부나 군대에서도 별 호응이 없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자면서 시작한 공사는 보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이제 아르미 캠프는 파키스탄 지진피해 현장에서 ‘명소(名所)’다. 라마단(금식 기간)이 끝나고 시작된 축제기간 첫날, 파키스탄 국영 PTV에서 이동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하루종일 생방송을 했다. 이재민들을 위한 급식과 관리가 잘 되는 캠프로 소문나자,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이 수시로 방문한다.
“수백 명의 이재민들이 빵 한 조각을 먹기 위해 눈 쌓인 거리를 몇 시간씩 맨발로 걸어서 옵니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돌아갈 수는 없죠. 밥 공장을 더 확장하려고 합니다.”
한겨울로 접어든 이재민 캠프는 낮에는 영상 20도로 올라가지만, 밤에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간다. 임시천막의 학교는 아이들의 기침소리 때문에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캠프 경비를 맡고 있는 아티프 대령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이 땅에 와서 성한 몸도 아닌데 하루에 두 시간씩만 자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김 목사는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준 천사”라고 했다.
이곳에서 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한기총이 후원을, 국제기아대책본부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이재민들이 추운 겨울을 나기에는 버겁기만 하다. 1000원이면 이곳에선 10인 가족이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바시안(파키스탄)=최순호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choish.chosun.com])-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